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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직구 금지’ 오락가락 정책에…소비자 “불신”·업계는 “불안”
정부 해외직구 정책 번복에 “혼란만 가중”
“손바닥 뒤집기식 행태” 온라인 불만 폭주
업계는 中 이커머스 공세 가능성 예의주시
시험설비 부족 지적…“획기적 개선책 필요”
오전 인천 중구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통관 작업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벼리·박병국 기자] “정부 해외직구 금지를 발표한 이후 장바구니에 넣어뒀던 전자제품을 전부 주문했는데, 사흘 만에 말을 바꾼 모습을 보니 허탈감이 듭니다. 해외직구를 막으려다 오히려 부추긴 꼴이 됐어요.” (소비자 A씨)

“중국 이커머스의 직구 상품이 늘면 국내 업계의 경쟁력은 앞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직구를 막기 위한 핀셋 규제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

해외 직구에 대한 ‘오락가락’ 정책에 업계와 소비자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유해한 상품을 제재하는 수단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없이는 이번 사태처럼 분란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국내 이커머스 관계자는 “파장에 대한 생각 없이 너무 성급하게 결정해 탈이 난 것”이라며 “국내 이커머스 업체와 형평성이 고려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이커머스 관계자도 “무조건 직구를 막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만큼, 지금이라도 철회돼 다행이라고 본다”며 “애꿎은 직구 플랫폼을 탓하지 말고, 시장 논리에 입각해 시장이 선순환되도록 가이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커머스 업계는 정부의 해외직구 금지가 중국계 이커머스가 아닌, 국내 이커머스 산업을 규제하는 모양새가 될 것을 우려한다. 해외직구를 대행하는 모든 업체에 해당하는 규제이기 때문이다. 한 직구 대행 관계자는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이 국내법으로 규제받는 내용을 중국계 이커머스에 동일하게 규제해야 하는데, 해외직구 금지 정책은 해외구매 대행업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직구를 대행하는 플랫폼의 혼란이 가중됐다.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애초 말이 안 되는 정책이었는데 지금이라도 철회해서 다행”이라며 “어느 품목까지 인증받은 걸 팔아야 하는지도 그렇고, 앞으로 정부가 보내주는 유해상품 리스트에 해당하는 상품만 안 팔면 되는 건지 모든 것이 모호하다”고 토로했다.

소비자들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불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정부의 해외 직구 금지 발표 직후 각종 육아카페에서는 해외에서 유모차나 아동용품을 구매해 온 소비자를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 16일 서울시청에서 박상진 소비자보호팀장이 인체발암 가능 물질이 검출된 해외직구 어린이용 머리띠와 시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한 소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더니 저렴한 직구를 막는 게 말이 되나”고 질책했다. 정책이 번복되자 “손바닥 뒤집기도 아니고 무슨 정책을 이런 식으로 하는지 답답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행정력”이라는 날 선 댓글도 쏟아졌다.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지금 여론이 들끓으니 일단 발을 빼고 수정한다고 했지만, 좀 식으면 별다른 수정 없이 그대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의 고객 유입만 부추길 것이란 목소리도 들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계 이커머스만 잡으려다 되레 이들이 편하게 상품을 팔도록 문을 열어준 모양새가 됐다”며 “기본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던 만큼 중국 이커머스들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을 만드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업계는 특히 현실성을 고려한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거 어린이 제품에 대한 직구를 막은 것처럼 민감한 품목의 경우 규제가 필요하다”며 “유해 제품을 규제하면서도 고물가 상황에 대한 대책부터 중국계 이커머스 침공 등 다각적인 논의를 거쳐 핀셋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11번가 등 국내 이커머스는 현재 어린이 제품에 대한 직구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한 해외상품 구매대행 업체 관계자는 “해외직구에서 KC 인증기관이나 시험설비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중요한 부분을 무시하고, 물품 수입 금지만 명령한 꼴”이라고 했다. 이어 “이 기회에 국가 예산을 투입해 인증기관의 행정 속도를 높이는 등 획기적인 개선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6일 정부는 어린이용 34개 품목,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 등 80개 품목을 대상으로 국내 안전 인증(KC 인증)을 받지 않으면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개인 해외 직구 상품에 안전인증을 의무화해서 사실상 해외직구를 차단한다는 해석을 낳으며 논란이 되자 뒤늦게 80개 품목의 해외직구를 한꺼번에 금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kimst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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