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10조원 이상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뿌린 보조금이 이미 1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통신은 12일(현지시간)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중국과 서방국의 패권 다툼으로 세계 경제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면서, 서방 각국이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지급한 보조금이 810억달러(111조1725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칩스법(CHIPS Act)을 앞세워 보조금을 대거 투하하고 있다. 칩스법은 미국 내에 설비 투자를 하는 반도체 제도업체에 390억달러의 생산 보조금을 포함해 5년간 총 527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까지 자국 기업인 인텔(85억달러)과 마이크론(61억달러)은 물론이고 대만 TSMC(66억달러), 한국 삼성전자(64억달러)에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설비 투자를 이끌어 냈다. 4개 기업에 대한 보조금 외에 소규모 업체에 대한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지원금 등을 모두 더하면 328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은 보조금 투입을 통해 현재 0%인 첨단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보고서에서 미국의 반도체 생산능력은 2022년 대비 3배 수준으로 늘어나고 10나노미터(㎚) 이하 첨단 공정 점유율은 0%에서 28%로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한국(9%)을 제치고 대만(47%)에 이어 2위 자리에 오른다는 얘기다.

EU 역시 반도체 제조 능력을 높이기 위해 2030년까지 430억유로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유럽판 칩스법을 내놓았다. 특히 독일에서는 마그데부르크 지역에 360억달러 규모의 팹(반도체 공장)을 짓는 인텔에 약 100억유로(14조8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고 NXP반도체, 보쉬, 인피니언 등 유럽 반도체 기업과 손잡고 합작법인을 설립한 TSMC에는 투자금의 절반인 50억유로(7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매출을 15조엔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4조엔의 지원 자금을 배정했다. 구마모토의 TSMC 1,2공장과 마이크론 히로시마 공장, 라피더스 홋카이도 공장 등에 지금까지 총 2조5670억엔(22조6000억원)의 보조금 지원을 발표했다.

그동안 세액 공제 등 간접적인 지원에만 치중하던 우리 정부도 10조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정책 금융과 민간 펀드를 재원으로 소재·부품·장비, 팹리스, 제조시설 등 반도체 전분야의 설비 투자와 R&D를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원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