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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도섬 다둥이맘의 도전…“해조류 화장품, 美 오스카도 반했죠” [인터뷰]
다시마·전복 활용한 친환경 화장품 만들어
‘맨땅 헤딩’ 자신감…할리우드도 홀딱 반해
성악가 꿈꾸다 어업인, 그리고 강한 엄마로
“화장품 넘어 건기식까지, 도전 계속됩니다”

박수미 이노플럭스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희량·박병국 기자] “완도 목욕탕에 가면요. 여자들이 미역을 몸에 붙이고 있어요. 그만큼 피부에 좋은데 이걸 이용한 화장품은 없었죠. ‘이거다!’ 싶었습니다.”

한반도 남서쪽의 끝자락 완도 바다엔 특별한 힘이 있는 걸까. 섬 속의 섬인 완도 고금도에 살고 있다는 아이 넷 다둥이 엄마의 눈빛은 바다의 윤슬처럼 반짝였다.

그는 지난달 세계 최고의 영화계 수상식인 오스카상에서 찬사를 받은 해조류 화장품 브랜드 마리나비를 만든 박수미(43) 이노플럭스 대표다. 마리나비는 슬리핑마스크, 아이크림 등 파지다시마(부서지고 조각난 다시마)와 전복패각 같은 해조류 부산물을 활용한 화장품 10종을 생산해 8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바다(mari)와 사람을 연결하는 해조류가 나비와 닮아, 마리나비(marinavi)라 이름 지었다.

헤럴드경제는 박 대표를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만나 버려지던 양식장 부산물을 세계가 찾는 화장품으로 탄생시킨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는 마리나비의 미국 진출을 돕고 있는 할리우드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화 감독이 함께했다.

박수미 이노플럭스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박 대표의 본캐(본래 캐릭터)는 매생이를 파는 어업인이다. 그는 유럽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음악인이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양식업을 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온 완도에서 블로그를 벗 삼아 살았다. 어느 날 ‘미역을 먹다 올린 글’에 “그 미역 어디서 살 수 있냐”는 사람이 생기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힘들게 일해 얻은 남편의 수산물을 위판장 대신 직접 팔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 대표는 11년 전 ‘매생이총각네’라는 법인을 만들고, 회원 수 5만명의 회사로 키워냈다.

그러다 해조류를 먹고 건강이 좋아졌다는 고객 반응에 수산물 바이오 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박 대표는 “직접 해조류를 키우고 먹는 사람이라 해양 성분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누구보다 잘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면서 “암세포를 죽이는 미역귀의 후코이단(fucoidan) 성분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해조류 화장품 시장은 국내외에서 틈새시장에 가깝다. 매생이 판 돈을 밑천으로 시작했지만, 연구원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는 “인건비만 매달 300만원~500만원에 달했고, 최소 5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서 “그러나 완도에 오려는 사람이 없어 결국 찾아다니며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해조류 발효 성분을 활용한 미국 브랜드는 ‘라메르’가 있다. 크림(60㎖) 하나가 5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이다. 박 대표는 “미역귀가 10㎏에 15만원이면 파지다시마는 절반 가격”이라며 “환경을 아끼면서도 좋은 성분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박수미 이노플럭스 대표(오른쪽)와 정화 메이크업 아티스트(왼쪽)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배움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수산벤처대학, 전남 청년창업사관학교 과정을 이수하며 그는 어업인 박수미으로 다시 태어났다. 2021년 이노플럭스를 설립하고, 이듬해 마리나비를 출시했다. 박 대표는 조선대 해양생물연구교육센터, 전남해양바이오센터와 연구하며 교수와 SCI급 논문(Marine Drugs)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22년 3월 와디즈 펀딩 플랫폼에서 시작한 마리나비의 슬리핑마스크는 목표 금액의 3500%를 달성했다. 이후 동아TV ‘뷰티앤부티’를 통해 소개되며 홍콩 등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해부터 판매를 시작한 마리나비 매출은 지난해 국내에서 2배, 해외에서 8배 상승했다. 미국 아마존, 일본 큐텐 입점을 넘어 현재 쿠팡, 토스뱅크,올웨이즈,에이블리, 롯데면세점(온라인몰), 해외 태국과 인도네시아 현지 플랫폼까지 판로를 넓혔다. 지난 17일에는 해조류를 활용해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로 해양수산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처음부터 목표는 해외였다. 덥고 습한 나라만 골라 박람회를 다녔다. ‘맨땅에 헤딩’으로 미국 소비자박람회까지 직원을 보냈지만, 초심자의 실수였다. 화장품 회사 관계자를 만날 수 없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할리우드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화 감독에게 인스타그램을 보내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미국 오스카상 시상식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게 전해진 마리나비의 제품들. [마리나비 제공]

정화 감독은 이런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정화 감독은 “메이크업 전문가들은 전 세계의 좋은 화장품을 누구보다 잘 찾는 사람들”이라며 “제가 배우들한테 추천할 때는 업과도 연결돼 있어 굉장히 신중하게 말하는데 마리나비는 바다에서 추출한 부산물을 재활용한다는 점이 독특한 매력이었다”고 돌아봤다.

박 대표의 화장품을 수개월 써 본 정화 감독은 오스카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체험하도록 마리나비 29개 제품의 협찬을 도왔다. 넷플릭스 시리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팀을 비롯해 미국 배우 밍나 웬도 마리나비 제품을 사용하게 된 계기다.

박수미 이노플럭스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박 대표는 2년차에 임신한 상태로 일을 해 어금니가 빠지는 일까지 있었다고 했다. 2016년 남편이 급작스럽게 쓰러진 후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꾸준히 달렸다. 그는 “화장품이 인증, 임상, 안전성검사는 물론 마케팅까지 손이 많이 가는 사업인데 몰라서 무작정 뛰어들었다”면서 “유럽 인증에만 1000만원이 들어 준비 단계부터 투자비가 너무 큰 것이 어려움이었다”고 말했다.

매생이 판매 수익으로 화장품을 연구하는 기간을 버티던 박 대표에게 최대의 위기는 기후변화였다. 그는 “지금 김 부족이 난리인데 3년 전부터 김이 이상했고, 몇십만개를 저장하던 매생이가 올해는 만개밖에 저장을 못 했다”면서 “산업화에 노력하는 어민에게 지원이 늘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마리나비는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의 성장 단계별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큰 고비를 넘긴 상태다.

미국 할리우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극찬한 트렌스포메이션 크림에센스 제품. [마리나비 제공]

외딴곳에서 양육과 병행하는 어려움도 고민 중 하나다. 하지만 박 대표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캄캄한 회사 창고에서 전 세계에 있는 바이어들과 온라인 미팅을 하고, IR(투자유치)을 준비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들의 모습에서 편견을 지울 수 있었다. 그는 “저라고 학원, 교육에 왜 관심이 없겠느냐”며 “다만 12살, 9살 아이가 방에서 주식과 부동산을 얘기하며 IR대회를 따라하는 걸 보고 완도의 삶 자체가 아이들에게 교육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어민과 상생하며 지역 사회에도 도움을 주고, 또 유능한 인재들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화장품을 넘어 해조류를 활용한 건강기능식품으로 사업 확대를 준비 중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바다의 정관장을 만들자는 목표로 시작했다”면서 “얼마 전 아들이 ‘완도의 화장품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엄마 회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는 말을 했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며 포부를 전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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