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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포통장 만들어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판매…대법 “금융기관 업무방해는 아냐”
1·2심 업무방해·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모두 유죄
대법, 업무방해 유죄 판단은 잘못
“금융기관 불충분한 심사가 원인은 아닌지 살펴야”
대법원[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가를 받고 대포통장을 유통했더라도, 곧바로 금융기관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계좌 개설 당시 금융기관 담당자가 허위 정보를 그대로 믿는 등 심사 자체가 불충분했다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오석준)는 업무방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받은 A씨에 대해 이같이 판했다. 원심(2심)은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봤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A씨는 다른 일당들과 함께 2019년 1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도박사이트,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유통할 계획으로 35개 유령법인 명의로 602개 계좌를 개설한 혐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마치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회사인 것처럼 계좌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은행 측에 제출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이 적용됐다.

1심과 2심은 A씨의 금융기관에 대한 업무방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형사18단독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준구 판사는 지난해 8월,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 등이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유령법인을 설립한 다음 계좌를 만들어 은행 업무를 방해하고, 위 계좌들과 연결된 통장 등 접근매체를 유통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 등이 유통시킨 접근매체가 인터넷 도박,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도 비슷했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4-3 형사부(부장 이훈재)도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실형 선고를 유지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업무방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금융기관 담당자가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불충분한 것은 아닌지 확인했어야 했다며, 만약 불충분하게 했다면 A씨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2심)이 채택한 증거만으론 A씨 등이 거래신청서에 어떤 내용의 기재를 했는지, 피해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거나 이를 확인했는지, A씨 등이 허위 서류를 위조해 제출함으로써 담당자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은 해당 여부에 관해 필요한 심리를 했어야 한다”며 “심리 없이 이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서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8월에도 유사한 사안에서 “금융기관 담당자가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추가 확인 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이는 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원인이 있으므로 가해자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어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후 이번 사건처럼 쟁점이 유사한 사안에서 같은 취지의 대법원 선고가 이어지고 있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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