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얼마전 배우 김수현이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회당 8억원의 출연료를 받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이라면 제작비의 제작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하지만 제작사에서 8억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이어 출연료를 깎아 회당 3억원을 받았다는 미담형(?) 기사까지 나왔다.
정확한 관계자의 인용 없는 이런 불확실한 기사들이 나오게 된 것은 지난 1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가 드라마 주연배우의 출연료가 10억까지 올라가는 등 제작비의 수직 상승으로 드라마 제작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고, 이에 따라 한국방송영상산업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거액 출연료를 받는 배우에게 드라마 제작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한, '개념 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된다. 출연료를 많이 받는 스타를 죄악시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것도 부정확한 정보로 특정 배우를 도마 위에 올린다면 더 큰 문제다.
원래 드라마제작사협회측의 의도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글로벌 OTT 자본 유입 등으로 야기된 스타들의 출연료 급상승으로 인한 회당 제작비 증가로 드라마가 성공해도 제작비 ‘리쿱(회수)’이 불가능해져 제작사나 방송사가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방치할 경우 드라마 제작의 선순환 구조가 완전히 파괴돼 K-드라마의 안정적 공급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드라마 제작 산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토리와 연기로 승부하는 콘텐츠를 많이 발굴하고 제작하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고장난 학교 시스템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로 나뉘어 폭력문화에 빠져들어가던 아이들이 스스로 그 시스템을 부셨다는 점에서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여기에 나온 백연여고 2학년 5반 25명 배우 전원의 회당 출연료를 합쳐도 톱스타 한 명의 회당 출연료에 못미친다. 반면, 무려 460억원의 제작비로 '7인의 탈출' '7인의 부활'을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제작업계에서는 전체 제작비에 출연료가 30%가 넘어서면 제작 퀄리티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런데도 최근 제작되는 드라마들은 이런 '마지노선'을 넘긴 드라마들이 많다. 이런 드라마는 제작비는 올라가도 완성도는 올라가지 않는다.
과거에도 출연료가 낮은 신인들을 기용해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끈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2006년 MBC 드라마 '궁'의 남자 주인공 주지훈은 당시 TV 출연 경험은 '한뼘 드라마'라는 5분짜리 에피소드가 전부였던 모델 출신이다.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인 여주인공 윤은혜도 연기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다.
2009년 KBS2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역을 맡은 이민호도 당시는 무명의 신인배우였다. 김현중은 아이돌 그룹으로 명성은 있었으나 연기 경험이 전무했다. 김준은 아이돌 멤버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궁'과 '꽃보다 남자'는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남았다.
큰 작품이지만 신인 배우이건 무명배우이건, 스타배우건 상관 없이, 끊임 없는 오디션과 발굴을 통해 작품 캐릭터에 가장 맞는 배우를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미국 드라마와 영화산업에는 이런 패키징 산업이 정교하게 발달돼 있어 완성도 높은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좋은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있어도 배우와 감독을 매칭시키고 투자, 배급, 마케팅까지 진행하는 패키징 작업이 잘 이뤄지지 못하면 좋은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기는 어렵다.
이렇게 작품에 최적화된 신인들을 발굴하고 건전한 제작비 구조를 가진 작품이 기성스타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송국의 편성에서 불리해지고 배척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방송사들와 미디어 플랫폼들이 여전히 작품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스타의 존재 여부에 촛점을 맞춰 편성하는 관례가 지속되고 있다. 방송국으로부터 "스타 캐스팅이 안돼 까였다" "스타가 없어 해외 판매가 안된다더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는 제작자들이 많다.
이런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는 모범적 드라마 제작 사례가 많이 나와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업계가 목격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드라마 제작의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구축하자는 발상이다. 10억 출연료 받는 스타배우 한 명을 문제 삼자는 얘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