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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활에 이젠 커피 취향까지 간섭…해외 팬 영향력 커지자 K-팝 업계 속앓이
‘스타벅스 리스크’에 카리나 반성문
해외팬 커지며 일거수일투족 관심
아티스트 작은 행동까지 나비효과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교육 좀 받고 불매운동 동참해라.”

최근 르세라핌 멤버 허윤진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지목된 스타벅스 텀블러로 음료를 마신 사진을 올리자, 그의 SNS엔 해외 팬들의 거센 저항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2. “카리나 팬들이 베풀어준 사랑이 부족했나요? 왜 팬들을 배신하기로 결정했나요? 직접 사과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앨범 판매량이 줄어들고 콘서트의 빈 좌석을 보게 될 거예요.”

K-팝 4세대 걸그룹 열풍의 시초 격인 그룹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의 교제 인정에 중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해외 팬이 이 문구가 적힌 전광판 트럭으로 시위를 이끌었다. 결국 카리나는 자필로 쓴 사과문을 올리고 ‘팬덤 달래기’에 나섰다.

세계 무대에서 K-팝의 영향력이 커지고 해외 팬덤이 거대해지면서 아이돌 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이 팬덤의 감시망에 오르고 있다. 팬덤이 연인 관계 같은 사생활은 물론, 개인적 취향이나 가치관 등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아티스트들을 옥죄고 있는 것.

가요계 관계자들은 “K-팝의 해외 비중이 높아지고 SNS를 통해 K-팝 아티스트의 활동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에 이들의 크고 작은 행동이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나비효과가 되고 있다”고 의견을 모은다.

최근 K-팝계에 날아든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이른바 ‘스타벅스 리스크’다. 지난 11일 르세라핌 멤버 허윤진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은 이 리스크에 기름을 부었다.

이 일의 계기가 된 것은 앞서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스타벅스 노동조합인 ‘스타벅스 노동자 연합’은 공식 SNS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스타벅스는 이에 “그런 메시지에 스타벅스 로고를 사용하지 말라”며 노조를 상표권 침해 협의로 고소했다. 이후 스타벅스는 ‘친이스라엘’ 논란이 확산되며 불매운동에 시달렸다. 그 결과 무슬림이 많은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스타벅스는 중동 분쟁이 있을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불매 운동이 일었다. 유대인 출신의 하워드 슐츠 창업주가 이스라엘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논란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난 수년 간 스타벅스를 둘러싼 논란과 후폭풍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엉뚱하게 그 불똥이 K- 팝 업계에 튀었다.

허윤진의 SNS로 달려간 해외 팬들은 “스타벅스 불매하라(Boycott Starbucks)”, “스스로 배워라(educate yourself)”, “#팔레스타인을해방하라(#Freepalestine)” 등의 댓글로 목소리를 높였다.

엔하이픈 제이크, 전소미 [SNS 캡처]

사실 ‘스타벅스 리스크’는 허윤진이 시작이 아니다. 그에 앞서 가수 전소미와 그룹 엔하이픈 제이크도 같은 지적을 받으며 뭇매를 맞았다. 전소미는 스타벅스 컵으로 음료를 마치는 영상을 틱톡에 올렸고, 엔하이픈 멤버 제이크는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노출됐다. 이에 거센 항의가 쏟아지며 전소미는 영상을 삭제했고, 제이크는 방송 중 “내가 실수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심지어 지난 달엔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뉴진스가 소속된 하이브의 미국 지사 최고 경영자(CEO) 스쿠터 브라운이 엑스(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 지지를 표명하자, 해외 팬들은 하이브 사옥 앞으로 트럭을 보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K-팝 업계는 지난 몇 년 사이 해외 팬들의 커진 목소리를 체감하는 중이다. 사안은 다양하다. K-팝 아티스트와 기획사의 부주의로 인한 실수도 있었지만, 최근엔 K-팝 아티스트들의 사소한 행동까지 근거 없는 논란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예가 엔하이픈의 지난 1월 마카오 공연이다. 당시 엔하이픈은 설을 맞아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가 중국 누리꾼들에게 “한국이 중국의 설을 훔치려 하고 있다”며 이유 없이 비난을 받았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일부 억지스러운 비난도 있지만,여러 사례를 통해 K-팝의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팬덤의 반응도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국내 팬들과는 다른 정서와 문화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 아티스트의 사소한 행동이 정치,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례가 많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K-팝 기획사들은 해외 팬들의 반응에 대해 늘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대다수의 기획사에선 아티스트의 SNS 관리가 필수적이다. 취향을 드러내는 것도 때로는 금기가 된다. 음식, 책, 영화 등의 콘텐츠는 물론 스포츠 경기에선 응원도 자제해야 한다.

지나치게 조심하다 보니 도리어 역풍을 맞는 사례도 있다. 그룹 제로베이스원 멤버 박건욱은 축구 한일전 경기를 앞두고 “아이돌이라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무슨 느낌인지 알죠? 난 한국인이지만, 좋아해주시는 많은 세계 팬분들이 있으니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국내 팬 사이에서 비난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에스파 카리나와 카리나 반성문

또 최근 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이재욱과 교제 중인 ‘카리나의 반성문’이다. 카리나의 자필 반성문을 살펴보면 그는 자신의 팬덤 ‘마이’를 향해 한없는 사랑을 증명하고 약속하며 고개 숙여 사죄했다. 지독한 ‘사랑의 벌’이었다. 영국 BBC는 물론 미국 CNN은 카리나의 사과문을 인용, “남자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분노한 팬들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비난하자 K-팝 스타는 비굴한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안을 보는 국내의 시각은 다양하다. ‘연애 여부’와 무관하게 K-팝을 존속하게 하는 팬덤의 영향력을 외면할 수 없기에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팬덤의 권력 앞에 K-팝 아티스트, 기획사가 몸을 낮추는 것은 ‘일종의 전략’에 가깝다. 팬덤이 있어야 아티스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갑을 아낌없이 여는 코어 팬들의 소비가 K-팝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팬덤 비즈니스’로 성장한 K-팝은 지난 몇 년 새 수출 호황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K-팝 피지컬 앨범 수출액은 2억9023만 달러(한화 약 3800억원, 관세청 기준)를 기록, 전년 대비 25.5% 증가했다. 이에 K-팝 업계의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완전히 넘어섰다.

특히 글로벌 K-팝 스타들이 소속된 대형 기획사들은 해외 매출의 역전 현상이 일찌감치 진행됐다.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르세라핌, 뉴진스가 소속된 하이브는 지난해 해외 음원 매출이 1071억원을 기록, 국내 매출(405억원) 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트와이스, 스트레이 키즈가 소속된 JYP 역시 지난해 상반기 해외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인 52%를 차지했다.

국내 대형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K-팝과 팬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코어 팬덤은 VVIP 고객이기에 이들의 성향과 정서, 문화 감수성을 고려해 면밀히 대응해야 한다”며 “그간 소홀했던 타 지역의 문화 요소나 역사적 맥락, 정치적 사건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때“라고 봤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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