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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업주가 직접고용의무 부인한다면 …대법 “근로조건, 법원이 정할 수 있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상황실 근무자들이 소송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모두 근로자성 인정
대법, 원심 판결 파기…“근로조건 부분 다시 판단”
[연합]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부인해 자체적으로 근로조건을 합의하지 못했다면 법원이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12일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상황실 근무자들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각각 낸 임금 소송과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2심) 중 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본 부분은 그대로 수긍했다. 다만 쟁점이었던 근로조건에 대한 부분은 “판단이 잘못됐다”며 “다시 판단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아울러 대법원은 직접고용이 이뤄지지 않은 기간에 대해 임금을 청구하기 위한 요건에 대해서도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파업 참가 기간과 결근 등을 한 기간에 대해선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봤다. 동시에 급여명세서 등 증명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기간에 대해선 근로자 측이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소송은 도로공사가 1995년부터 통행료 수납업무 등에 대한 외주화를 진행하면서 시작했다. 단계적인 외주화 확대 정책에 의해 2008년엔 전국의 모든 도로공사 영업소가 해당 업무를 외주화했다. 상황실 근무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들은 민원전화를 응대하고, 시설물에 대한 순찰·점검 업무를 담당했다.

도로공사의 외주화 정책에 대해 요금수납원, 상황실 근무자들은 반발했다. 이들은 재판에서 “공사가 형식적으로 제3의 업체를 통해 용역을 제공하도록 했으나 실질적으론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에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다”며 “사용자 지위에 있으므로 본인들을 직접 고용하고, 밀린 임금을 달라”고 주장했다.

각각 진행된 1심과 2심에선 모두 도로공사가 패소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596명에 대한 1심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민사부(부장 김상호)는 2017년 12월, 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하고 밀린 임금 약 31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공사가 요금수납원에게 업무와 관련된 구제적인 지침을 전달했고, 업무 일지·대장 결재라인에 공사 직원도 포함돼 있었으며, 근무자들이 공사의 로고가 새겨진 근무복과 명찰을 착용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그렇다”고 판단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2민사부(부장 권기훈)의 판단도 비슷했다. 2심 재판부도 2019년 1월 “공사와 요금수납원의 계약이 실질적으로 근로자 파견계약에 해당한다”며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날부터 이들이 근무했다면 받았을 임금 상당액을 공사가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상황실 근무자 36명에 대한 하급심 소송 결과도 유사했다. 상황실 근무자들에 대한 1심을 맡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민사부(부장 반정우)도 2018년 6월, 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공사가 이들에게 약 47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경비 및 상황실 보조업무는 도로공사의 중요한 업무라고 볼 수 있다”며 “공사가 근무자들에 대해 교통상황 및 근무일지의 보안점검 등을 통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심을 맡은 대구고등법원 3민사부(부장 이흥구) 역시 2019년 2월, 공사 측 패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공사가 근무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한 사정 등을 고려했을 때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러한 두 원심(2심) 판결을 모두 파기했다. 구체적인 근로조건, 밀린 임금의 지급 범위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다는 이유였다.

먼저, 대법원은 “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는데 사업주가 파견관계를 부인해 자치적으로 근로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 법원이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신중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에 대해 대법원은 “공사의 현장직군 하위 직종 중 하나인 조무원은 무기계약직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단순·반복 업무를 담당하므로 통행료 수납원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공사가 통행료 수납원을 직접 고용할 경우 조무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적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어 상황실 근무자들에 대해선 “업무형태가 조무원과 다르고, 노동강도도 동일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원심(2심)은 조무원의 근로조건을 적용했으므로 이 부분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밀린 임금의 지급 범위에 대해선 원심(2심) 보다 좁게 판단했다.

원심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결근 기간, 앞선 소송 제기로로 인해 근로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기 전의 기간, 급여명세서 등 근로제공 사실을 증명할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기간 등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부분은 공사의 직접고용 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파기했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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