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후궁 조선후기 왕족 삶 담은 장소
곳곳에 왕실 비하인드 스토리 재미 가득
주변엔 박물관·맛집 등 즐길거리도 풍성
종묘 옆 서순라길의 정취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서울 시내 4대궁은 한국에 한번쯤 와본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잘 안다. 그런데 ‘궁궐사극 외전’이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4대궁 즉 운현궁, 경희궁, 칠궁, 종묘 등에 대해 상세히 아는 국민은 적은 듯 하다.
경희궁은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첫 1위 ‘킹덤’ 촬영지라서, 종묘는 종로4가 대로변을 오갈 때 보여서 알 만도 하지만 운현궁과 칠궁이 품은 그들만의 스토리는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곳으로의 여행은 광화문~종로3가 익선동에서 끊긴 도심 운종가(옛 종로) 역사문화 여행의 범위를 서대문과 종로4~5가로 확장하는 것이고, 청와대-경복궁 벨트 탐방의 남서쪽(운현)과 북동쪽(칠궁) 방면으로 외연을 넓히는 일이다. 이들 ‘숨은 4대궁’ 주변엔 예술 공간, 먹거리 등 역사 여행 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다.
고종의 어린시절 집이자 흥선대원군의 철혈통치의 산실 운현궁 |
흥선대원군이 터 잡은 ‘운현궁’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터잡아 아들 고종이 보위에 오르기 전 12살까지 키운 곳이다. 대원군이 10년간 국정을 이끌었던 곳으로, 조선 후기 왕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미로처럼 연결된 경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안채 격인 이로당과 노락당을 지날 때는 겸손하라는 취지로 낮게 만든 출입구에서 허리를 숙여야 한다.
운현궁 북쪽 건너편엔 헌법재판소가 있는 재동과 K-뷰티 거점 ‘설화수의 집’이 있는 계동이 붙어있다. 재동은 수양대군의 유혈 쿠데타 때 중신과 단종 측근들의 시신을 태우던 재가 날렸다는 설이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1930년대 대저택을 개조해 만든 설화수의 집 라운지에서는 무료로 예약이 가능한 다양한 클래스가 열린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전통차와 베이커리, 논알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오설록 티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사전 신청을 통해 견학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도서관과 전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안국동 소금빵 맛집은 오전에 가야 긴 대기줄을 피한다.
조선 500년 임금을 낳은 일곱 후궁들의 사당, 칠궁 |
종묘에 못간 후궁들의 안식처 ‘칠궁’
임금을 낳았지만 종묘에 들어갈 수 없는 후궁들의 안식처가 칠궁이다. 영조 때 친모인 숙빈 최씨의 궁을 지었는데, 고종이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만 왕비급으로 모시는 게 전례가 없다고 판단, 숙빈과 함께 왕의 어머니였던 후궁 7인을 함께 배향토록 했다.
칠궁에는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육상궁 ▷영조의 후궁, 추존왕 진종의 어머니, 정빈 이씨의 연호궁 ▷선조의 후궁, 추존왕 원종의 어머니, 인빈 김씨의 저경궁 ▷숙종의 후궁, 한때 중전,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의 대빈궁 ▷영조의 후궁,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선희궁 ▷정조의 후궁,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의 경우궁 ▷고종의 후궁,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귀비 엄씨의 덕안궁이 있다. 선희-경우궁, 육상-연호궁의 신주는 같은 전각에 있어, 사당 건물은 다섯이다.
칠궁의 입구는 사실 청와대 경내 서쪽 영빈관 옆에서 보이지만, 칠궁을 눈여겨 보는 청와대 관광객은 별로 없다. 숙빈 최씨의 왜곡 과장된 고변으로 사약까지 받은 장희빈의 슬픈 사랑, 영조의 첫 사랑(정빈)과 최고의 사랑(영빈), 외교 달인 광해군의 친모 공빈의 라이벌 인빈, 상궁 엄씨의 고종 마음 얻기 전략 등 조선시대 러브스토리가 숨 쉬는 곳이다.
‘킹덤’으로 유명세 탄 경희궁
광해군 때 불탄 창덕궁을 대체할 인왕산 쪽 인경궁과 세종의 많은 후궁 자손의 거처 자수궁과 함께, 경희궁도 지어졌다. 경희궁은 새문안궁, 서궐, 경덕궁 등으로 불리다 1760년 현재 이름이 됐다. 왕족의 사저로서 동 창덕궁, 서 경덕궁(경희궁) 격으로 마련됐다.
흥화문을 지나 숭정문까지 이어지는 길과 드넓은 광장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숭정문에 들어가기 전 인왕산의 옆모습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팬데믹 시기 ‘랜선 한류’의 원조 격인 드라마 ‘킹덤’ 촬영지이고, 중국의 한복 침략이 기승을 부릴 때 보란 듯 한복 패션쇼를 열었던 곳도 바로 여기다.
경희궁 뒤편엔 국립기상박물관이 있는데, 앞마당엔 식물 계절관측표준목인 봄 벚꽃나무와 가을 단풍나무가 서있다. 기상박물관 가는 길에 만나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다. ‘어릴 적 넓게 만 보이던 작은 골목길’ 속에 서울의 근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9월 새단장 하는 종묘
종묘는 9월 완공을 목표로 높은 칸막이를 쳐놓은 채 보수 공사 중이다.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영녕전(보물),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이상 국가무형문화재)가 있는 세계유산이다.
종묘 서쪽편 경비 파출소 ‘순라청’의 순찰길이던 서순라길은 종로의 분위기를 담은 한옥 식당과 통창 한옥 카페, 영국식 맥주 펍부터 한국-일본 크로스오버 요리주점, 국내 수제 맥주 한옥 펍까지 들어서 있다. 또 돌담길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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