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류 19개 가중치 1.46% 불과한데…물가엔 ‘이례적’ 영향력
서울의 한 전통시장의 과일 판매대. [연합] |
[헤럴드경제=배문숙·홍태화 기자] 과일물가가 13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식료품값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공급측면에서 여름철 과일이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전인 올해 상반기까지는 식료품값의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월 식료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0% 상승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2.8%)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식료품 물가 상승세는 둔화하고 있지만 속도가 느린 탓에 넉 달째 6%대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달(3.2%) 보다 0.4%포인트 하락했지만, 식료품 물가는 0.1%포인트 떨어지는데 그쳤다. 미친 물가가 좀체 잡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식료품 물가는 사과·배 등 과일이 견인하고 있다. 1월 과일 물가는 26.9% 올라 2011년 1월(31.2%)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전체 물가상승률(2.8%)에 대한 과일 물가 기여도는 0.4%포인트로 2011년 1월 이후 가장 높았다.
과실류 19개의 가중치가 14.6으로 전체(1000개)의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이다. 과실류 물가는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밤, 감, 귤, 오렌지, 참외, 수박, 딸기, 바나나, 키위, 블루베리, 망고, 체리, 아보카도, 파인애플, 아몬드 등으로 구성돼 있다.
1월 물가상승률에서 수산물 기여도가 0.02%포인트에 그쳤고 축산물은 오히려 0.01%포인트 ‘마이너스’ 요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농·축·수산물 중에서 농산물, 특히 과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높은 과일값은 지난해 이상 기온에 따른 공급량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통상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더라도 0.1~0.2%포인트에 그치는 과실류 기여도는 작년 9~10월 0.4%포인트로 뛰어올랐다. 작년 11월 0.3%포인트로 다소간 낮아졌다가 연말·연초 인플레이션 영향력을 다시 높였다. 1월 물가상승률(2.8%) 가운데 과일만으로 전체 인플레이션의 7분의 1을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과일 물가는 앞으로 빨라도 여름까지는 안정 요인을 찾기 힘들다. 채소는 생육기간이 짧아 공급을 빠르게 늘릴 수 있지만 과일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 7월이나 돼야 아오리 사과가 나온다. 이마저도 초록 사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빨간 사과가 아니다. 9월 과일이 돼야 아리수·홍로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빨간 사과가 나온다. 앞으로 4개월 가량은 더 높은 가격이 유지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수입도 힘들다. 과일 농가의 수입 반대를 차치하더라도 품종이 다르다. 특히 배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배를 대체할만한 수입산을 찾기가 어렵다. 병충해 전파 우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병해충 검사 8단계를 거치게 되면 4년 이상 걸릴 가능성이 크다.
과일 외 다른 먹거리 물가도 높은 편이다. 식료품 물가를 구성하는 우유·치즈·계란(4.9%), 채소·해조(8.1%), 과자·빙과류·당류(5.8%) 등도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을 웃돌았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누적된 물가 부담은 민간 소비·투자를 옭매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식료품·유가 등을 중심으로 고물가가 지속하면 내수 회복도 지체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물가 둔화세가 답보하면 고금리 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더 길어져 내수를 더 제약할 수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고금리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금리 인하 목소리가 높지만 고물가가 여전히 금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와 시장 모두 물가 둔화 속도에 주목하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행에서도 유가와 더불어 농산물가격이 물가 둔화 흐름을 저해하고, 금리 인하 시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은 ‘한국·미국·유로지역의 디스인플레이션 흐름 평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높은 농산물가격 수준과 누적된 비용압력 등이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을 더디게 할 수 있다”며 “라스트 마일에서 물가 둔화 속도는 각국의 통화긴축 기조 전환(pivot) 시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전망실장도 “신선식품 등 물가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아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물가가 낮아져야 금리도 낮아질 여지가 있고 투자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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