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호수 오명 딛고 부활한 ‘시화호’
세계 최대 인공서핑장 웨이프파크 내달 재개
월곶 선사유적, 거북섬 축제 다양한 콘텐츠
갯골생태공원엔 조만간 둑방길로 벚꽃이 핀다. |
[헤럴드경제(시흥)=함영훈 기자] ‘르네상스(부흥)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의 시흥(始興)은 100여년 전 안양과 과천, 안산 및 화성 일부를 관할하던 거대 고을이었다.
지금은 남으로 시화호부터 북으로는 부천과 산자락을 공유하는 성주(聖柱: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산까지 남북으로 길고, 서쪽은 월곶, 동쪽은 뾰족하게 튀어나와 광명역 근처 목감천변 목감나들목(IC)까지 이어지는 영역이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수도권에선 시흥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1994년에 태어나 서른즈음 된 시화호는 죽다 살아나 화려하게 부활했고, 서해로 흘러가는 신천천, 은행천의 민물길, 서해에서 밀려들어오는 사행성 내만(蛇行性 內灣:뱀 모양의 갯골) 짠물길이 나 있다. 여기에 중간 중간 큰 호수들이 물길의 대합실 역할을 하는 해양-내륙 양수겸장, 반전매력 생태여행지이다. 호반의 도시 춘천, 충주, 합천이 부럽지 않다.
세계 최대 자연 바닷물 인공서핑장 ‘웨이브파크’와 호변 근처 근사한 숙소들을 속속 들어서고 있는 시흥은 스페인의 지중해 휴양지 ‘코스다 델 솔’을 꿈꾼다.
시화호 거북섬 웨이브파크, 작년 국제대회 모습 |
깨끗해진 시화호, 오는 16일 전국노래자랑이 열리는 거북섬 및 경관브릿지, 수만년전 문명이 발견된 월곶을 앞세워, 고을 이름에 걸맞게 ‘르네상스를 시작’한 것이다.
시흥의 대표적인 봄나들이는 바로 짠물길에서 민물호수로 이동하는 걷기여행 혹은 자전거 하이킹이다.
월곶, 오이도 동쪽에 있는 갯골생태공원부터 호조벌, 관곡지를 거쳐 호변 벚꽃군락지가 아름다운 물왕호수까지 ‘그린웨이’ 코스는 걷는 데 2시간20분, 자전거로 40~60분이 걸린다.
출발점은 갯골생태공원이다. 원기둥 모양으로 세운 높이 22m 흔들전망대에 오르면, 서해 용이 뭍으로 상륙한 흔적처럼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바닷길과 갯골변 갈대군락지, 구불구불 컨셉트에 맞춰 조성해 놓은 산책로, 염전, 잔디광장과 캠핑장, 해수체험장, 탐조대, 송도국제도시 등이 발 아래 놓인다.
갯골 흔들전망대 봄 풍경 |
갯골 위로는 백로와 갈매기가 번갈아 날고, 좁은 바닷물 위에는 흰뺨검둥오리가 짝지어 노닌다. 산책을 즐기는 주민과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싱그럽고, 드넓은 초원를 제멋대로 뛰며 자기 목줄로 주인을 끌어당기는 견공의 달음질이 귀엽다. 머지않아 갯골 옆 둑방길에 벚꽃이 활짝 필 것이다.
바람이 불면 6층 구조의 루프탑 전망대가 살짝 흔들린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과는 색다른 짜릿함을 선사한다. 총 중량 52t, 4.2㎝까지만 흔들리며 최대 600명을 수용한다. 일출과 일몰을 한꺼번에 보는 곳이라 인기가 높다. 다만 바람 센 날 여명과 노을 때엔 300명까지만 올려보낸다.
축구장 180~200개 가량 크기인 공원의 중심부엔 염전도 있다. 짠맛 속에 단맛도 나, 한때 시흥 보물창고로 불렸지만 지금은 문화유산 가치를 보존하고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된다.
갯골생태공원 한복판에 있는 염전체험장 |
갯골 기준으로 호조벌이 관곡지 보다 더 북동쪽에 있지만, 좋은 길로 가려면 호조벌을 먼저 거친다.
보통천 제방을 따라 직선으로 달리다 만나는 호조벌은 중앙정부 호조가 직접 나서, 왜란과 호란으로 생활이 곤궁해진 백성들을 위해 바다을 막아 논으로 만든 곳. 수도권에 이런 농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호젓하다.
다시 갯골 방향으로 조금만 거꾸로 돌아오면, 관곡지를 만난다. 올해 탄신 600주년을 맞은 문장가 강희맹 선생이 연씨를 뿌려 지금도 여름이 되면 연꽃이 만발한다. 주말에만 개방하는 관곡지의 또 다른 명물은 잔디밭 위 연못을 내려다보는 정자와 소나무 세 그루를 품은 인공섬이다.
물왕 호수 |
은계호수공원 |
담수화를 하려다 황폐해지자 바닷물을 끌어들여 되살아난 시화호는 짠물 호수인데 비해, 5월 철쭉이 아름다운 오난산 전망공원 앞 은계호수공원과 그린웨이 종점인 물왕호수는 완전한 민물 호수이다.
물왕호변에 둘레길을 낼 수 있는데도 굳이 호수 쪽으로 쑥 들어온 물 위에 데크산책로를 둔 것은 별칭 ‘물의 왕’인 이 호수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라는 배려이다. 봄 벚꽃이 호변을 감쌀 때, 서울 석촌호수가 부럽잖다.
사진 맛집 오이도 빨강등대, 평일에도 엄마의 손을 잡은 어린이들의 탐구학습이 끊이지 않는 오이도박물관, 선사유적공원을 거쳐 남쪽 사화호변 거북섬으로 향한다.
오이도 빨강등대 |
오이도박물관 선사 주거지 체험 |
라군 인 테라스, 아트 큐브, 더 웨이브 등 거주지 브랜드 이름만 봐도 ‘파도가 있는 블루라군의 예술마을’을 꿈꾸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이름은 시화호 거북섬 멀티 테크노밸리(MTV).
아직 개발작업이 한창이라 벤치마킹 대상인 지중해 도시 ‘코스다 델 솔’과는 아직 차이가 크다. 많은 건물이 공실 상태이고, 예술마을이라면서 번듯한 공연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아직 번듯한 도시 만들기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인 듯 싶다.
스페인의 지중해변 코스타 델 솔 |
그럼에도 거북섬 앞 시화호는 일반적인 서해바다 답지 않은 청정수역으로, 위로는 멸종위기종 노랑부리저어새, 물닭, 검은머리흰죽지, 청둥오리 등이 날고, 물속에선 우럭, 광어, 돔, 동죽조개 등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시아 최초인 인공서핑장 웨이브파크이다. 16만여㎡ 규모로, 세계 2위가 된 영국 시설보다 3배가량 크다.
오는 4월 하순 시즌을 오픈하는 이곳엔 동해와 지중해 중간쯤 되는 높이의 서핑 파도가 8초마다 좌우 두 번씩, 1시간에 약 1000번 가량 밀려온다. 스페인 기술을 접목해 길이 220m, 폭 240m로 2만 6000t의 바닷물을 순환적으로 채운다. 부대시설로 워터파크, 키즈존 등이 있다. 지난해 ‘월드서프리그(WSL) 퀄리파잉 3000’대회를 개최하며 세계 1위의 존재감을 뽐내기도 했다.
시화호 전경 |
최대 35m 깊이로 초심자부터 전문가까지 모두 이용하는 딥다이빙풀, 루프탑 인피니티풀, 트릭아트가 있는 보니타가는 지난해 개장했다. 릴레이 오픈에 맞춰, 버스킹공연 ‘웨이브 오브 뮤직’, 시흥물수제비영화제, 물총축제, 하와이풍의 알로하거북섬 페스티벌 등이 차례로 열렸다.
이미 골격을 갖춘 경관브릿지는 오는 16일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 때 임시 개방된다. 시화호를 향해 300m 가량 뻗어나가 바다 같은 호수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게 된다.
거북섬 경관브릿지 |
한국관광공사 위촉 작가 이시우씨는 시흥 여행 추천 코스로, 당일치기는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그린웨이(갯골생태공원-관곡지-호조벌-연꽃테마파크-물왕호수)→시흥오이도박물관 코스를, 1박2일로는 첫날 능곡선사유적공원→미생의다리(자전거다리)→그린웨이, 둘째 날 오이도박물관→오이도선사유적공원→OASIS(시흥오이도문화복합공간)→빨강등대→생명의나무전망대→오이도전통수산시장 코스를 추천했다.
시흥 르네상스 프로젝트 중 올해는 ‘시화호의 해’이다. 각종 해양레저를 배울 수 있는 해양레저 아카데미는 4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다. 올 초여름에는 시장배 전국 서핑대회, 가을에는 월드서프리그(WSL) 시흥코리아오픈 국제서핑대회가 열린다. 6월에는 브레이킹 배틀도 개최된다. 거북섬 걷기 한마당, 전국 하프마라톤대회도 이곳에서 진행된다.
시흥의 일신 우일신, 환골탈태를 지켜보면서, 여행자 스스로 ‘나의 르네상스’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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