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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리 똥손’도 백종원 만든다…자취인 살리는 놀라운 비밀병기[퇴근 후 부엌- 준비편(조미료②)]

[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가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지난 시간에는 소금, 설탕(대체 감미료), 후추까지, 집밥 먹을 결심을 했을 때, 꼭 필요한 기본 조미료를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요리 똥손도 요리 고수처럼 보일 수 있는 ‘스킬용’ 조미료를 소개합니다.

망한 요리도 되살리는 강령술, ‘굴소스’
굴소스. 신주희 기자

집에서 야매로 만든 크림 파스타가 망했을 때 굴소스 한 스푼 넣으면 만사 해결입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크림 파스타의 인기 비결은 ‘굴소스’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굴소스는 19세기 말에 탄생했지만 볶음밥, 채소 볶음, 양식 요리에도 빼놓을 수 없는 만능 소스입니다. 감칠맛과 짭짤함과 달콤한 맛이 특징입니다. 실패한 요리도 되살려놓는 굴소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망한 요리에서 탄생했습니다.

이금기 굴소스의 창업자 이금상. [이금기 굴소스 홈페이지 캡처]

굴소스는 중국 남부 광둥성의 바닷가 지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굴 요리가 유명하던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이금상은 실수로 불 위에 굴 요리를 올려놓고 깜빡했습니다. 한참 뒤 돌아와 보니 굴은 형체도 없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고 국물은 걸쭉한 갈색 액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만화 ‘요리왕 비룡’ 캡처]

이 액체를 맛보니 요리왕 비룡도 울고 갈 맛이 났습니다. 그렇게 주변 가게에 소스를 내다 팔기 시작했고, 1888년에는 자신의 이름 ‘이금’에 회사·가게를 뜻하는 기(記)를 붙여 ‘이금기(李錦記)’를 설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굴소스는 염도가 높은 식품이지만 한 번 개봉하면 꼭 냉장 보관해야 합니다.

2% 부족할 때, 참치액
참치액. 신주희 기자

굴소스가 달달한 감칠맛이 난다면 참치액은 감칠맛에 짭짤한 맛이 특징입니다. 무침이나 국 요리, 계란찜, 볶음밥을 할 때 어딘가 2% 맛이 부족하면 참치액 한 숟갈이면 됩니다. 일본에서 유래된 조미료 같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개발된 액상 조미료입니다. 식품기업인 한라 식품이 1999년이 참치액을 개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피쉬소스, 액젓과 비슷해 보이지만 생산 과정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액젓을 만들 때는 생선에 소금을 넣고 발효하지만 참치액은 가쓰오부시 등 참치를 물에 넣고 추출한 제품입니다. 액젓 특유의 쿰쿰한 맛은 뺀 채 액젓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훈연향이 덜한 제품이 좋습니다.

들킬 뻔 했다 내 국물 비법, ‘고체 육수’

고체 육수. 신주희 기자

코인 육수 또는 고체 육수는 국물요리를 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조미료입니다. 칼국수, 계란국, 찌개 등 국물요리에 한 알만 넣으면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베이스를 만들어줍니다. 다시팩을 우리는 것보다 쉽고 쓰레기 처리도 간편합니다. 하지만 코인 육수를 남용하면 된장국에서도, 미역국에서도 똑같은 맛이 날 수도 있습니다. 국물 요리의 ‘치트키’는 될 수 있겠지만 때로는 요리에 변주도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코인육수를 글루탐산나트륨(MSG)으로 만든 덩어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사실 고체 육수는 무, 표고버섯, 건멸치 등을 분말 형태로 만들었다가 다시 압착해 생산됩니다.

Kimbap에는 ‘참기름’이 들어간다
참기름. 신주희 기자

미국에서 한국의 냉동김밥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부 해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김밥이냐, 마키냐”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댓글을 보다 한 외국인이 ‘맛있는 마키’라고 댓글을 달자 다른 외국인들이 ‘이건 마키와 다르다. 김밥은 참기름이 들어간다’고 설명한 댓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밥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일본의 ‘노리(김)마키’는 스(식초)가 들어가고 김밥은 참기름이 들어가 고소한 맛이 특징인 건 맞습니다. 김밥에서 뿐 아니라 참기름은 나물 반찬, 국, 밥 등 한식요리 레시피에서 빠지지 않는 재료입니다.

[맛 썰]

요리에 감칠맛을 더하는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감칠맛은 ‘오미(五味)’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감칠맛 때문인데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감칠맛이 실제로 기본 맛 중 하나에 해당하는지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1985년 하와이에서 개최된 ‘제1회 우마미(감칠맛) 국제 심포지엄’에서 감칠맛이라는 용어가 글루타메이트와 뉴클레오타이드의 맛을 나타내는 과학용어로 공인되었고 현재 감칠맛은 제5의 기본 맛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감칠맛을 내는 성분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글루탐산나트륨(MSG), 구아닐산, 이노신산입니다. 글루탐산나트륨(MSG)은 다시마, 조개, 파마산치즈, 토마토 등 채소와 유제품에 많습니다. 구아닐산은 표고버섯에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노신산은 참치, 멸치, 가쓰오부시 등 생선과 고기류에서 발견됩니다.

감칠맛은 무엇보다도 다른 맛과 합쳐졌을 때 맛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짠맛과 더해지면 더 적은 소금의 양으로도 같은 강도의 짠맛을 느낄 수 있는 식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의사들이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해 글루탐산나트륨을 활용하라는 이야기도 하죠.

또 감칠맛을 내는 두 가지 다른 재료와 궁합을 맞추면 감칠맛이 효과가 몇 배는 늘어납니다.

연구에 따르면 글루탐산이노닌산이 5대 5로 만나면 감칠맛이 원래보다 7배까지 증폭된다고 합니다. 다시마(글루탐산)로만 국물을 내지 않고 멸치(이노닌산)를 꼭 같이 우려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글루탐산구아닐산이 5대5로 만났을 때는 맛이 30배까지 증폭됩니다.

각 문화권별로 감칠맛 조합법이 존재합니다. 양식에서는 소고기와 양파, 토마토, 셀러리를 활용해 감칠맛을 냅니다. 푹 끓인 라구 소스를 먹을 때 진한 감칠맛이 나는 이유죠. 일식에서는 다시마와 가쓰오부시, 무가 감칠맛 3대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한국은 가쓰오 대신 멸치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중식은 파와 닭을 활용해 감칠맛을 뽑아냅니다. 바다와 접한 면적이 넓은 식문화권일수록 해산물을, 육지일수록 고기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글루탐산나트륨(MSG) 조미료를 사용했을까요? 많은 분들이 대상의 ‘미원’을 떠올리시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미료의 맛에 눈을 뜬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글루탐산나트륨을 발견한 일본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는 1909년 스즈키 제약사와 손잡고 곧바로 '아지노모토'를 출시합니다. 그렇게 아지노모토는 일년 뒤인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당시 서울에는 냉면집이 문정성시를 이뤘는데 아지노모토사는 이 냉면집들을 먼저 공략했습니다.

1940년 신문에 실린 아지노모도 광고.

1927년에는 아예 평양 대동문에 냉면집을 직접 차려 MSG로 국물 맛을 낸 냉면을 팔 정도였습니다. 1951년 아지노모토사가 발간한 연혁사에 따르면 평양의 냉면집을 대상으로 ‘면미회(麵味會)’를 만들었죠. 아지노모토를 사용하는 냉면집 사장님들의 모임 정도가 되겠습니다. 아지노모토는 이를 통해 자사 제품을 제공하고 판촉했죠. 당대 최고의 무용가 최승희와 기생 문예봉을 모델로 내세워 불티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지노모토는 국내 기업 대상이 생산한 ‘미원’의 아성을 못이기고 왕좌를 내주게 됩니다. 지금은 그나마 조미료 제품으로는 ‘혼다시(가다랑어포로 기반 조미료)’가 국내에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문헌〉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맛의 원리(최낙언)

[퇴근후 부엌] 다음 편에서는 장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매주 토요일에 찾아갑니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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