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 '측정할 수 없는 것(Imponderabilia)'. 사진 속 등장 연기자들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유튜브 Royal Academy of Arts 캡처]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벌거벗은 남녀가 40~50㎝ 가량 떨어진 채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관람객들은 동선을 따라 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이는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측정할 수 없는 것(Imponderabilia·1977)'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이를 자신의 연인이었던 울라이(우웨 레이지에펜)와 직접 선보이기도 했다. 파격적인 발상과 구성으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아브리모비치의 전시에서 일했던 한 누드 연기자가 과거 전시에서 자신의 몸을 만지는 관객을 제대로 제지하지 않았다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뉴욕포스트와 영국 일간 더 타임스 등이 23일(현지시간) 전했다.
존 보나페데는 아브라모비치의 전시에서 일하는 동안 남성 여럿이 자신의 신체 중요 부위를 만졌지만 미술관은 '합당한 시정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전날 뉴욕주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보나페데는 당시 '측정할 수 없는 것'의 퍼포먼스를 맡았다.
그는 문제의 관람객들이 MoMA 경비원이 뻔히 보이는 곳이나 카메라가 퍼포먼스를 녹화 중인 가운데서도 자신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신보다 앞서 이 일을 맡은 연기자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지 못했다는 이유로 잘렸기에, 현장에서 어려운 상황을 '버티는' 태도를 주문받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보고하지 않고 넘어갔고, 두 번째부터는 미술관 경비팀에 이를 알렸다고 했다. 그는 소장에서 "이러한 성적 접촉의 유일한 목적은 원고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나페데는 이 일로 수년간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알려지지 않은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소송은 2022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뉴욕주 성인생존자법'에 따라 제기됐다. 성인생존자법은 공소시효가 끝난 성폭력 피해자들도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한편 1946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출생한 아브라모비치는 틀을 깨는 파격적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렸다. 국내에서는 2010년 MoMA에서 선보인 '예술가가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 등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는 아브라모비치가 미술관 문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2층의 한 공간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퍼포먼스였다. 방문객은 마리나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눈맞춤 뿐이었다.
당시 아브라모비치의 한때 연인이었던 울라이도 이 장소를 찾아 화제가 됐었다. 아브라모비치의 전시 기간 누적 관객은 850만명이었다. 이는 그 시절 뉴욕시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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