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업구조 깨지고 역할 바뀌어…배터리 중간재 수입 증가세
“국내 자급률 안 높이면 전과 같은 대중 흑자 기대 못 해”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31년 만에 첫 적자가 예상되는 대(對) 중국 무역수지(수출-수입)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이차전지 원료와 중간재 수입 확대가 지적됐다. 대중 수출부진과 무역적자가 지정학적 문제나 일시적 외부 변수가 아니라 산업구조의 틀이 바뀌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우리나라가 해당 품목의 자급률을 높이고 수입 경로를 다변화하지 않으면, 이미 뒤집힌 대중무역의 판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중 무역수지는 올 들어 11월까지 180억달러(약 23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대중 무역수지는 1월 39억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올해 매월 적자를 이어갔다. 지난달까지의 전체 무역수지가 143억1000만달러 적자인 점을 고려하면 대중무역수지 적자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해 중간재를 중국에 내다 파는 방식이었지만, 중국이 중간재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시작하면서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나라 이차전지 생산업체가 원료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배터리 등 중간재 역시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오기 시작하면서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실제 대중 수출입비중 추이를 살펴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수출 비중은 19.4~20.4% 수준인 반면 수입 비중은 1월 19.8%에서 11월 23.2%까지 증가세다.
한은 관계자는 “이차전지 쪽은 중국이 기술 우위, 가격 경쟁력이 있어 전세계적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우리나라도 중국 배터리 등 필요한 부분이 있어 꾸준히 대중 수입을 늘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중국산 이차전지 및 태양광의 글로벌 점유율은 각각 62.9%(SNE 리서치), 80~95%(국제에너지기구, 니케이 등)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 기준 이차전지 제조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중국 외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48.5%에 불과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28.7%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나타냈지만, 중국 회사인 CATL가 2위(27.2%)로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조사에서도 이차전지 관련 총 36개 품목 중 24개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14개 품목은 중국 수입 비중이 70% 이상에 달해 중국이 수출 규제 등 제재를 가할 경우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뒤집힌 대중 무역 상황에 대응하려면 중간재 중심의 대중 수출을 소비재 중심으로 확대하고, 기술개발과 수·출입시장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제조업을 꾸준히 키우고 있다. 투자액을 살펴보면 고정투자가 최근 줄었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보다도 높은 상황”이라며 “반면 우리나라 이차전지 관련 R&D(연구개발) 예산은 추세적으로 한번 늘었다가 꺾이면서 가는 느낌이다. 중국과 경쟁에서 대응이 이미 늦어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란 평가도 나온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부문에서 자급력을 빨리 높이지 않는다면 과거와 같이 대중 무역수지가 높은 흑자를 기록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망했다.
구조적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에 무역 흑자를 안겨주던 중국이 거꾸로 우리가 돈을 퍼다주는 상대로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이 기술력을 갖추면서 우리나라의 수출품목을 스스로 만들게 되면서 중국 수출 길이 막힌 이유도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이 일정 부분 막혀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대체 가능한 품목은 중국이 더는 사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