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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강남 동작 마저 충격의 지주택 파산…지옥주택조합 차라리 폐지(?) [박일한의 住土피아]
서울에서도 지주택 파산 잇따라
국회, 계약철회 기간 60일로 확대 법안 발의
‘제도 개선 아니라 폐지하자’ 목소리도

[헤럴드경제=박일한 선임기자] 지난 10일 서울회생법원은 동작구 상도동 장승배기 ‘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에 대해 파산선고를 내렸다. 전날 이 법원은 관악구 당곡역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에 대해서도 파산을 선고했다. 지주택 사업장은 조합원으로부터 대규모 투자금 반환소송을 당한다거나 은행 대출이 어려워 돌려줘야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파산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번 지주택 사업 파산은 서울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서 토지사용권을 85% 이상 확보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정도 사업장이 파산했다면 다른 지주택 사업장은 안봐도 뻔하다는 것이다. 파산이 결정되면 조합원은 분담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없다. 다른 지주택 사업장 조합원들도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지주택 사업 피해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피해가 워낙 커 ‘원수에게 권하는 사업’, 한번 들어가면 너무 고통스러워 ‘지옥주택사업’으로 통한 지 꽤 됐는데도, 지주택 피해 사례는 계속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높은 기대감에 계약했다가 후회한다. ‘집이 없는 사람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땅을 사고, 건설사를 시켜 아파트를 지어 나눠 가진다는 사업 모델’은 너무 좋아 보였다.

견본주택을 둘러보곤 욕심이 더 났다.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내부엔 모두가 알만한 대형 건설사 브랜드가 붙어 있었다. 단정한 복장을 한 상담사가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로 살뜰히 반겼다. “조합원 모집 거의 다 끝났다”, “로얄층은 다 나갔고 저층만 남았다”, “계약금 1000만원만 내면 된다”, “시세차익이 3억원 이상 난다”같은 설명에 혹했다.

*자료:서울시

‘지역주택조합’ 계약자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친다.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이런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니’ 놀라고, ‘나한테도 드디어 행운이 찾아왔구나!’ 들떴다.

계약자들이 지주택 상담사에게 들은 레퍼토리는 대부분 비슷했다.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우려했던 점을 해소해 주려는 듯 꽤 꼼꼼히(?) 설명했다. ‘토지매입을 80% 이상 끝냈다’, ‘지구단위계획이 곧 나온다’, ‘사업계획승인이 금방 떨어진다’, ‘신탁사가 책임지고 대기업이 시공을 맡았으니 안전하다’,‘추가분담금 없이 3년 후면 입주할 수 있다’, ‘원하면 언제든 조합원 탈퇴가 가능하다’ 같은 말이 솔깃했다. 기대감이 커졌고, 어느 순간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렇게 ‘지역주택조합 조합원’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런 말들은 대부분 거짓이었다. 기본적으로 지주택 사업장 중 토지를 제대로 확보한 사업장은 없었다. 지역주택조합은 재건축조합이나 재개발조합과 달랐다. 애초에 토지가 없이 사업을 시작해 조합원을 모집해 마련한 돈(분담금)으로 토지를 사야 하는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설립 조건인 ‘토지 사용권의 80% 이상 확보’라는 건 그저 땅주인으로부터 개발하겠다는 승낙을 얻은 것뿐이다. 돈을 내고 소유권을 확보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피해자들은 여기서 한번 속는다. 토지주로부터 개발해도 좋다고 허락받은 걸(토지 사용권 확보) 토지 소유권 확보로 오인한 것이다.

최종 사업계획 승인을 받으려면 토지를 95% 이상 ‘소유’해야 한다. 조합원으로부터 모은 돈으로 땅을 사야 한다. 그런데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조합원이 많이 몰리고 사업이 잘 된다 싶으면 땅값을 올리는 토지주가 꼭 나타난다. 70~80% 소유권을 확보해도 늘 10~20%를 채우는 게 어렵다. ‘알박기’ 사건도 곳곳에서 터진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자꾸 지연된다. 조합운영비, 조합원모집대행비용, 홍보비용, 차용금이자 등 비용은 늘어난다. 지연되는 만큼 조합원 분담금은 불어난다.

사업이 늘어지면 조합이 시공사라고 정해 놓은 건설사는 슬그머니 자리를 뺀다. 어차피 업무협약 차원의 계약만 있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은 없다.

설령 땅을 사는 과정을 겨우 해낸다 해도 건축허가 과정에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환경문제 등 이런저런 이유로 규모를 축소하거나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업은 또 늘어진다.

그러니 사업 성공 확률은 크게 떨어진다. 2004년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전체 지주택 사업중 성공(준공)한 건 17% 정도밖에 안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인기 높은 서울 등 대도시에선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업은 기약 없이 지연된다. 피해 사례가 곳곳에서 속출한다.

국회에선 이달 1일 김정재 의원 외 10인이 ‘주택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지주택 가입자의 계약 철회 가능 기간을 기존 30일에서 60일로 늘리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해당 지주택을 검토해 조합원으로 최종 결정하기 위해 30일은 너무 짧다고 본 것이다.

과장 광고 등에 속아 지주택에 계약금을 납부했다고 해도 두 달 이내 추가 정보를 확인해 탈퇴하고 싶으면 하라는 것이다. 지주택 탈퇴 소송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이 추가 피해를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국회의 판단이다.

물론 제도 개선이 아니라 아예 폐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주택 전문가는 “20%도 성공하기 힘든 사업을 유지하려고 80%를 고통에 빠뜨리는 제도”라며 “폐지 절차를 밟는 게 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폐지 움직임도 있다. 서울, 부산 등 8개 광역지자체가 2016년 정부에 지주택 제도 폐지를 건의했다. 당시 정부는 일부 국민이 주택 마련을 위한 방법으로 활용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며 ‘관리·감독 강화’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피해는 줄지 않았고, 국민청원, 폐지운동 블로그가 운영되는 등 폐지를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줄지 않았다.

지금도 지자체에서 지주택 제도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최동원 경남도의원은 “제도 보완이 아니라 아예 폐지해 추가 피해를 막고, 현행 사업은 전수 검토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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