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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리 없이 물가와의 전쟁, ‘MB도 실패’…자칫 인력 낭비로 끝난다 [홍태화의 경제 핫&딥]
“정부가 노력하면 억제할 수 있다” 금리 인상 없이 물가 정책 펼친 MB
고환율 유지, 결국 2012년까지 인플레 겪어…현 정부도 같은 일 반복
금리 인상 어렵고, 유가 등 비용 통제 불가…묘수 없는데, 일단 총동원
전 부처 물가 담당화, 인력 낭비될 수도 “원유 올랐는데 가격 어찌잡나”
사진은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금리 인상이 비교적 크게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이명박(MB)’ 정부 시절이 회자된다. 당시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유지했고, 자연스럽게 금리 인상도 없었다. “정부가 노력하면 억제할 수 있다(이 전 대통령)”는 것이 물가에 대한 접근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물가는 정부를 내내 괴롭히다 임기 말인 2012년이 돼서야 잡혔다.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정부 개입만으로 물가를 잡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은 금리로 조절할 수밖에 없다. 일부 기대학파는 비용 인플레조차도 금리로 간접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가 물가 관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수급 관리 정도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업무다. 그런데 온 부처 공무원이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인력 낭비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정작 필요한 정책 개발을 놓치게 될 수 있다. 과도한 정책이나 ‘기업 윽박 지르기’가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월별 소비자물가 등락률은 2007년 10월 처음으로 3%대에 진입했다. 이후 2008년 7월 5.9%로 상단을 찍고, 2009년 5월 약 20개월만에 2%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도 않은 2010년 1월 3.5%로 다시 뛰어 올랐다. 그 후에도 등락을 반복하다 2012년 3월이 돼서야 안정됐다.

금리 인상 타이밍이 실기로 지적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08년 8월 5.25%에서 2009년 2.0%까지 떨어졌다. 당시 정권 초기엔 ‘환율주권론자’가 득세했다.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상수지 흑자로 경제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금리를 올릴 수 없었다. 수입물가 직접 상방압력이다. 금리 인상은 결국 2010년 7월(2.25%)부터 시작돼 2011년 6월(3.25%)이 돼서야 상단을 찍었다. 물가 안정 약 9개월 전이다.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다. 부동산 문제 등 경제 현안이 겹겹 얽혀있어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 환율은 높고, 한미 기준금리는 역전된 지 오래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23년 1월 3.5%에서 지금까지 고정돼 있다. 미국 기준 금리는 5.25~5.50%다. 한미간 금리차는 상단 기준으로 2.0%포인트에 달한다.

물가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비로 2021년 10월 처음 3%대에 진입한 뒤, 2022년 7월 6.3%로 상단을 찍었다. 3% 진입부터 상단까지 걸린 시간이 MB정부 때와 정확히 같다. 이후에도 비슷한 시점인 2023년 6월 2%대로 진입했다. 그러나 고작 2개월만에 3.4%로 올라섰다. 지금까지는 MB정부 시절과 비슷한 물가 추이였지만, 이젠 더 급격한 오름세다.

농축수산물 등 이상기온 탓으로 인한 일부 수급 문제도 있지만, 유가 탓이 크다. 국내 헤드라인 물가에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석유류 가격은 전월과 비교해 1.4% 올랐다. 중동 전쟁 등의 요인으로 국제유가가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간 영향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에 각 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임명하고, 현장 대응을 강화하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본격 가동했다. 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우유와 커피 등 주요 식품의 물가를 품목별로 집중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MB정부 시절과 비슷하다. 2012년 정부는 ‘물가안정 책임제’를 시행하면서 1급 공무원이 서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품목의 물가 관리를 책임지도록 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임명된 만큼 온 부처가 나서 물가 대응에 나서긴 했는데, 방도가 마땅치 않다. 금리는 고정돼 있고, 국제유가는 통제는 커녕 중동 전쟁으로 예측조차 힘들다. 비축물량을 통한 수급관리, 재정을 통한 할인 지원, 일부 세제혜택 등 기존에 나온 대책에서 크게 벗어나는 방안을 찾기 어렵다. 사실상 인력낭비가 될 수 있다는 한탄도 나온다. 물가 업무가 최대 현안으로 추가되다 보니 기존 업무엔 비교적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격인상 대신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꼼수 인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인위적 가격 통제의 부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일부 독과점 기업의 ‘단합 편승 인상’은 잡아야 겠지만, 실제로 원자재 값이 오른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거나 제품 양을 줄이는 것을 꼼수라고 보긴 어렵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개입은) 단기적 효과는 있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며 “원유 가격이 올랐는데 가격을 잡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용 견인 인플레라고 봐야 하는데, 합리적 기대학파는 이 또한 금리로 잡을 수 있다고 본다”며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는 방식인데, 물론 지금은 이것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독과점의 경우에는 이번 기회에 정부가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독과점으로 가격이 오르는 부분은 잡아내야 한다”며 “지금 오르는 품목 중엔 독과점 시장이 꽤나 있는데, 이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 핫&딥’은 경제 상황과 경제정책 관련 현안을 더 깊고 쉽게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경제 상황 진단과 전망은 물론 정책에 담긴 의미와 긍정적·부정적 여파를 풀어서 씁니다. 부작용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또 다양한 의견을 담겠습니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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