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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품목'별 물가 잡겠다는 정부 vs 슬그머니 '양' 줄이는 업계...서민은 웁니다 [김용훈의 먹고사니즘]
김병환 기획재정부 차관이 24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 소재 농협 하나로마트를 방문해 매장을 시찰하며 주요 농축산물 수급 현황과 생활물가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만나는 이들마다 물가 이야기를 합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들 “숨 쉬는 것 빼곤 모두 올랐다”고들 합니다. 사과 한 알이 4000원에 육박하고 옷·신발 값이 1992년 5월 이후 31년 5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하니, 과장된 말도 아닙니다. 치솟은 금리 등의 영향으로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다보니 전세 대신 월세를 사는 이들이 많이 늘었는데, 월세는 또 어떻습니까. 월세는 올 들어 10월까지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올랐습니다. 의식주 물가가 모두 올라 서민들의 ‘민생고’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8,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달아 3%대를 기록한 후 10월엔 나아질 것이라 했는데, 오히려 3.8%로 9월(3.7%)보다 더 오르자 공무원들이 바빠졌습니다. 정부가 각 부처 차관에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부여하고 현장 대응을 강화하는 범부처 특별 물가 안정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미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곧 내년 4월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치러진다는 점도, 스스럼없이 “정부-여당”을 강조하는 경제부처 정무직 공무원들에겐 부담입니다. ‘행여나 고물가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하는 노심초사를 숨기지 않습니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이 9일 서울시 영등포구 홈플러스 영등포점을 방문, 수산물 물가안정 이행대책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

범부처 특별 물가안정 체계는 각 부처에서 품목을 결정, 매주 차관회의에서 해당 품목들의 가격 동향 등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물가를 ‘관리’하는 겁니다. 현장이 중요합니다. 첫 물가차관회의가 열린 지난 9일 기재부 차관보는 서울 창동 농협마트 지점과 상계 수협마트 지점을 찾아 천일염 공급계획물량 1만t 중 5000t 방출을 시작하고 점검했습니다.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한 산업부는 연말까지로 연장된 유류세 인하정책을 챙기고, 농식품부는 ‘농식품 수급상황실’을 두고 28개 주요 농식품 품목의 물가관리 전담자를 지정했습니다. 해수부도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 등에 나섰습니다.

당연히 시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물가를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이 1~2% 수준인 업계특성상 원부자재 가격, 물류비, 제조경비 등이 올라 소비자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생산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정부는 시장의 이런 반응에 대해 “업계에 대한 일방적 요청이 아니라 민·관 상호협력을 통한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고위관료는 “예전처럼 정부가 요청을 한다고 기업들이 가격을 안 올리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요즘 기업들은 제품에 매겨진 ‘가격’은 그대로 둡니다. 대신 ‘가격 인상분’만큼 제품의 ‘중량’을 줄입니다. 꼼꼼히 뜯어보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중량이 줄었는지도 모른 채 예전과 같은 값을 내고 해당 제품을 사는 겁니다. 기업들의 이런 조치를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이라고 부른답니다. ‘슈링크’(shrink)와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만들었습니다. 정부 압박을 못 이긴 식품업계의 고육책이란 평가도 있지만 아무래도 ‘속은 듯’한 기분은 어쩔 수 없네요.

풀무원 핫도그. [연합]

슈링크플레이션을 동원해 가격을 유지한 제품은 상당히 많습니다. 농식품부가 지난달 20일 국내 식품회사 16곳을 불러 물가안정 협조를 당부한 이후 더 늘었죠. 동원F&B의 ‘양반김’ ‘동원참치라이트스탠다드’ 등이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중량만 낮췄습니다. 이에 앞서 해태제과가 지난 7월 ‘고향만두’와 ‘고향 김치만두’ 용량을 줄였습니다. 같은 달 롯데칠성음료는 과즙 함량을 낮춘 ‘델몬트오렌지’ ‘포도주스’를 출시했고, OB맥주도 4월부터 ‘카스 맥주’ 묶음팩 제품용량만 캔당 기존 375㎖에서 370㎖로 5㎖씩 줄였습니다. 한 봉지 5개였던 풀무원 핫도그도 4개로 줄었죠.

그런데 기업이 이렇게 스리슬쩍 제품용량을 줄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요. 현행 소비자보호법상에는 고지 없이 제품용량을 줄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을 줄이는 것은 결국 가격인상과 다름 없는 만큼 가격인상처럼 용량을 줄일 때도 기업이 사전에 공지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 프랑스 대형 마트에선 ‘슈링크플레이션’ 문구를 단 진열대를 설치해 이런 제품들만 모아 안내하기도 한다는군요. 어쨌거나 치솟은 물가로 한숨 쉬는 건 결국 서민밖에는 없는 것 같군요. 우리 네 살림살이는 언제쯤이면 나아질까요.

※[김용훈의 먹고사니즘]은 김용훈 기자가 정책수용자 입장에서 고용노동·보건복지·환경정책에 대해 논하는 연재물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면 언제든 제보(fact0514@heraldcorp.com)주세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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