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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등이란 착각은 금물” 이건희의 ‘경고’…삼성 반도체에 주는 교훈은? [김민지의 칩만사!]
1988년 이건희 고민 ‘D램·인재·변화’
‘제3의 창업’ 선언 같은 혁신적 변화 필요성 제기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과 삼성전자가 1988년 개발한 4Mb D램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이 제일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제일(第一)이 되려면 어떻게 하느냐를 제가 (회사에서) ‘메기’처럼 다니며 교육하고 있다.”(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1년 동안 이재용 회장은 국내외 삼성전자 사업장을 두루두루 살피며 삼성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회장이 가장 많은 고민을 한 건, 단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였을 겁니다.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1위를 위해서 꼭 성공을 거둬야 하는 미래 먹거리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취임 1년차에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메모리 반도체 격전이 펼쳐지던 때 이건희 선대회장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운 건 단연 D램이었습니다. 반도체에서 세계 2위 자리까지 올랐지만, 당시 강국이던 일본이란 벽을 넘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 1등과 삼성이란 조직의 혁신, 그리고 인재 제일 철학 등 3가지가 모두 연결돼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오늘 칩만사에서는 지금의 삼성을 만든 이건희 선대회장의 머리 속 철학을 돌아보며 현재의 삼성 반도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삼성전자 제공]
‘1988년’의 이건희…“변화, 변화, 또 변화”

이건희 선대회장은 1987년 12월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후 3개월만인 1988년 3월, 그는 ‘제2의 창업’을 선언합니다. 당시 그의 최대 관심사는 ▷삼성 반도체를 세계 1등으로 만드는 것 ▷삼성 조직의 소위 ‘정신상태’를 바꾸는 것 ▷삼성을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는 회사로 만드는 것(복지사업)이었습니다.

취임 3년차였던 1989년 이건희 회장이 한 언론사와 했던 심층 대담을 살펴보면, 그의 반도체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1989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떤 사업에 역점을 둘 것이냐는 질문에 “역시 반도체”라며 “반도체가 무기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이 회장은 일본과의 기술력 차이에 대한 아쉬움과 우려도 내비쳤습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삼성 제품 가운데 ‘세계 제일’은 없다”며 “반도체가 (매출과 기술 측면에서) 세계 2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시바·히타치가 4Mb 제품(D램)에서 제일 앞서가는 회사인데, 삼성은 그보다 6개월 뒤쳐가고 있다”며 “6개월이라고 하면 별거 아닌 걸로 생각하시는데 반도체에선 6개월이 6년보다 더 길다”고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 세계 제일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반도체를 꼽은 겁니다.

삼성전자가 1988년 개발한 4Mb D램(왼쪽)과 1992년 업계 최초로 개발한 64Mb D램(오른쪽) [삼성전자 홈페이지]
좋은 직원서 좋은 제품 나온다…“조직 ‘마인드’ 중요”

인재와 조직문화 측면에서도 2023년의 삼성 반도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습니다. 오늘날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인재 확보입니다. 혁신을 구현할 기술 인재 확보가 최대 과제입니다. 조직 내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급선무입니다. 삼성의 인재 제일 경영 철학이 조직 전반에 걸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시대가 변한 탓에 사내 조직 관리가 예전만큼 쉽지 않습니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학교 명예교수는 최근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삼성이 초일류 기업을 유지하려면 직원의 몰입 수준을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며 “그러려면 직원들이 회사를 내에서 존중받고 ‘내가 회사를 위해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자부심’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989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 반도체를 세계 제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의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 봤습니다. 건전한 위기의식이야 말로 회사를 발전시킨다고 본겁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제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도 그렇게 착각하는 사원들이 많다”며 “제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제가 메기처럼 다니면서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소 메기론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메기론이란, 미꾸라지들끼리만 키운 곳보다 메기와 함께 키운 곳의 미꾸라지가 더욱 건강하다는 사례에서 비롯된 철학입니다. 즉, 적당한 위기의식이 조직의 발전을 이룬다는 겁니다.

그는 삼성을 “직원들이 ‘내 회사다’라고 생각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은데, 참 힘이 든다”고도 말했습니다. 또 “직원에 역점을 둬야 좋은 상품이 나온다는 게 제 철학”이라며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1988년 선언한 ‘제2의 창업’ 선언에도 이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직원의 자율성이 커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 선대회장은 “이병철 창업회장이 50년 동안 이끄시다 보니까 직원들이 틀에 박힌대로 하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 한국사회가 엄청나게 바뀌면서 자율개념의 경영이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조직 내 힘의 분배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옛날엔 회장님이 80%, 비서실이 10%, 각 사장이 10%의 힘을 갖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제(회장)가 20%, 비서실의 250명이 40%, 각 사장이 40%를 가지도록 하려고 한다”며 “저는 비서실과 각사가 충돌할 때 중재만 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회장 혼자가 아닌 직원들로 이뤄진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 삼성…이건희 ‘제2의 창업’ 같은 혁신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8월 서울 신천동 삼성SDS를 방문해 직원들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 시대에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과제에 직면해있습니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대만 TSMC에 밀려 사실상 세계 2위인 파운드리 분야에서의 혁신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1년간 직원들과의 스킨십도 늘리고, 여러 국내외 사업 현장을 돌아다니며 현장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 제일 삼성’에 대한 분석과 직원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꾸려나갈 앞으로의 1년에 주목합니다. 확실한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과 혁신을 위해서는 소위 ‘제3의 창업’ 선언과 같은 파격적 발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겁니다. 과거보다 산업이 훨씬 빠르게 급변하는 만큼,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현재까지는 이병철 창업회장이 삼성그룹을 만들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글로벌 기업을 키운 것에 견줘볼 때 사업 포트폴리오가 변경된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래 삼성이 오늘날 이렇게 성공하게 된 이유가 ‘세계 제일’을 내걸었기 때문인데, (이건희 회장 이후에) 이재용 회장만의 경영 철학이나 비전이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재구 한국경영학회 회장(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도 “이건희 회장의 앞선 ‘신경영 30년’이 있었다면 이제 또 새로운 ‘삼성웨이’를 만들어 갈 과제가 이재용 회장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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