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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규 감독이 ‘1947 보스톤’을 만든 이유[서병기 연예톡톡]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영화 ‘1947 보스톤’이 지난 27일 개봉했다.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끼리 함께 볼만한 영화다.

강제규 감독이 이 영화를 구상한 지는 꽤 오래 전이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우승한 서윤복 선수(임시완)와 손기정 감독(하정우), 남승룡 코치(배성우)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감 감독은 1981년 대학 재학 시절,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의 실화를 담은 영화 ‘불의 전차’를 보고 감동을 받아 달리기에 관심을 보였다. 사료를 접하면서 기왕이면 육상 종목중 마라톤을 소재로 하고싶은 생각이 강해졌다. 마라톤은 우리 인생을 녹여내기에 좋은 영화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이웨이’(2011)에서도 마라톤 스토리가 들어가 있다.

이처럼 민족주의 색채가 나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국뽕’이나 ‘신파’ 논쟁을 피할 수 없다. 강 감독은 그런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원형이 너무 좋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덧대거나 덧붙이지 말자. 사실을 과장하지 말자. 원하는 감정을 얻기 위한 특별한 장치를 설치한다든지, 감정을 돋우는 건 이야기의 원형을 방해할 수 있다. 담백하게 전달만 잘해도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와 재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과하지 않게 절제돼 있다. 이는 강 감독은 자신이 각색과 감독을 맡았던 ‘장수상회’(2015)에서 까칠한 노신사 성칠(박근형)과 금님(윤여정)의 만남을 통해 설렘과 선함의 감정을 자연스레 만들어낸 것과 유사하다.

“저도 모르게 작동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인간의 선함, 착함의 정서들이 있다. 이를 비틀고 꼬집기보다는 담백하게 전하며 삶을 바라보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감 감독은 특히 손기정 선생의 일대기는 예측이 가능한데, ‘1947 보스턴’은 정보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역사적 한과 아픔이 담겨진 역사물을 많이 연출했지만, 성취와 승리를 다루는 게 많지 않았다. 숨겨진 이야기를 알려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1947 보스톤’이 서윤복(임시완), 손기정(하정우), 남승룡(배성우)중 한 인물에 치우치지 않고, 삼각구도에 의해 완성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강 강독은 “세 사람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분히 했던 결과로 보고, 시나리오 작업부터 배려했다. 특정인물에 치우친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의 기능이 배제되면 극적 재미가 상쇄될 것 같아 그 밸런스 유지는 특별하게 유념했다”고 털어놨다.

보스톤 마라톤의 난코스 언덕구간인 하트브레이크와 서윤복이 어린 시절 밥을 훔쳐먹기 위해 열심히 달린 가파른 무학재 서낭당 가는 길을 연결시키는 강 감독의 기지는 여전히 촉이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마라톤은 2시간동안 40여㎞를 달리는, 어찌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스포츠지만, 역전 드라마를 연출해낼 수 있고, 절묘하게 마라토너의 존재성을 부각시켜주는 포인트를 이렇게 활용함으로써 극적인 재미까지 더하게 됐다.

보스턴에는 1947년도 마라톤 코스가 국간별로 너무 현대화돼 있어 현지 촬영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보스턴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답사하며 스타트부터 피니쉬라인까지 호수구간 등 중간 지형지물을 파악한 후, 이와 유사한 지역으로 헌팅을 다녔다. 결과적으로 운 좋게 호주 멜버른 근교 질롱을 찾아냈다고 한다.

강 감독은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를 만든 감독이다.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선진 할리웃 기법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에게 ‘한국적(的)’이라는 말은 좀 더 넓은 의미다.

“한국적인 콘텐츠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해왔다. 할리웃 기법과 기술이 할리웃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전세계인의 상상의 결과물이지, 할리웃 전유물은 아니다. 마음대로 끌어올 수 있다. 전유물이라는 생각 자체가 할리웃에 대한 컴플렉스다. 우리 식으로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 주저하면 안된다.”

강 감독은 1962년생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과거의 영화와 지금의 영화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한 중년배우와 식사를 하는데, 50대 후반이 되면서 연기를 알 것 같고,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라. 나한테 너무 와닿았다. 이제 영화매체에 대해 좀 더 알고, 인생에 대해서도 또다른 시선이 생기니까 설익은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좀 더 진화된 모습으로 영화에 담을 수 있겠다. 그런 게 여전히 꿈틀거린다. 후배들이 선배를 통해 자기의 미래를 보게 되는데, 조로하지 않고 이 나이가 되도록 굳건하게 자기 세상을 만들어가는구나 라고 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됐으면 좋겠다.”

OTT의 등장과 팬데믹은 영화에는 큰 위기로 작용했다. 팬데믹은 회복됐지만 영화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강 감독은 “그 전에도 영화에 위기들이 왔었고, 극복을 했는데, 이번에는 강도가 세다. 이번에는 극복일지, 동반일지를 고민해보면 동반의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 영화 관객수는 어느 정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OTT 생태계와 영화가 살아날을 수 있는 협업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이 괴멸하지는 않는다. 한국 콘텐츠를 전세계인이 공유하는 것은 OTT때문에 가능하다. 그 찬스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다. 양자 택일의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강 감독은 “후배들과 계급장 떼고, 현장에서 싸우는 매력이 있다. 특혜가 있으면 게임이 재미없다. 없으니까 늘 긴장하게 되고 흥미가 생긴다. 나이는 불리함이 더 많다”고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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