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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의 극단 선택, 공무상 재해 입증 어려워…입증 책임 완화 필요”
문유진 법무법인 판심 변호사[판심 제공]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고인과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자살 순직 인정 과정에서 입증 책임이 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서이초에서 사망한 교사 A씨의 유가족을 대리해 순직 인정을 신청한 문유진 법무법인 판심 변호사는 1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변호사는 입증 책임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유가족이 업무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문 변호사는 유가족이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개연성을 어느정도 설명한다면, 인사혁신처가 순직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불승인을 하기 위해서는 인사혁신처가 직접 업무와 무관한 다른 결정적 사건이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련 소송을 다수 맡아본 변호사에게도 교사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라는 점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의 우울증 때문인지 공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명확하게 선을 긋기 어렵다. 문 변호사는 “자살이 특정 사건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정신적 상해를 입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우울증 환자도 좋은 환경을 제공 받으면 치료 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개인적인 우울증이 있더라도 특정 사건이 자살을 ‘촉발’했다면 자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순직 인정 절차는 다음과 같다. 청구인인 유가족과 소속기관(학교)이 신청서와 증빙자료를 교육지원청에 제출한다. 교육지원청이 자료를 검토한 뒤 공무원연금공단에 제출하면, 공무원연금공단이 추가로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최종 결정은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심의회가 내린다. 인사혁신처 판단에 불복할 경우 유가족은 인사혁신처에 재심을 신청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문 변호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초기 증빙자료를 모으는 과정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원인이 ‘학교’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부담은 사실상 유가족 혼자 지게 된다. 문 변호사는 “업무상 재해란 업무 수행성, 업무 기인성이라는 2가지 요소를 필요로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인정되지 않으면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며 “2개 요건 충족을 위해 어떤 사실관계가 필요한지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유가족이 홀로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업무수행성은 근로자의 업무수행과 활동 과정에 사망, 부상 등 재해의 ‘원인’이 있다는 의미다. 업무기인성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다. 업무를 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재해가 업무로 인해 발생했거나, 기존 질병이 악화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입증 책임이 유가족에게 있다는 점과 교사의 업무상 특성 때문에 교사의 업무상 재해 인정률은 특히 낮은 편이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교육공무원의 과로사(뇌심혈관계질병 사망) 인정률은 22.72%로 전체 공무원(소방·경찰·교육·일반) 인정률 64.62%에 크게 못 미친다. 교사의 자살 순직 인정률 또한 15%로 전체 공무원의 자살 순직 인정률(36.36%)의 절반에 불과하다.

극단 선택이라는 행위의 특성도 입증 부담을 키운다. 문 변호사는 “자살로 인한 업무상 재해 인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원인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건 본인 당사자가 이미 사망했다는 점이다. 사망하지 않은 당사자의 질병이 업무와 관련 있다는 점을 밝히기도 어려운 일인데, 사망한 당사자의 마음을 밝히는 것은 정말 너무 어렵다”며 “인과관계 입증 완화의 법리가 인정돼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족이 사망자의 심리 상태를 역추적하는 과정은 가혹하고 현실적 벽이 상당하다”며 “업무와 자살과의 인과관계 인정은 다른 질병과 달리 개연성이 충분하면 입증으로 추정된다고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공무상 재해를 심사하는 인사혁신처의 입장이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 변호사는 “모든 자살이 공무상 재해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상 재해에 대한 유족 급여는 국민 세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며 “하지만 공무상 재해로 봐야하는 경우까지 소극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공무로 사망했다면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인사혁신처가 순직 인정을 너무 소극적으로 하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인사혁신처의 판단에 불복해 유가족이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중되는 유가족의 고통, 소송에 드는 시간 등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변호사는 순직 신청을 준비하는 유가족들에게 당부도 전했다. 그는 “(순직 신청 시)공무원 의 생전 업무 내용, 사망에 가까운 시점의 업무량, 주변 동료나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호소했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 법적 요건에 맞춰 신청서와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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