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행동하는 예술가’ 세묜 비치코프 “침묵은 악마, 인간답게 행동했을 뿐” [인터뷰]
24일 체코필 세묜 비치코프 첫 내한
‘일본의 조성진’ 후지타 마오와 협연
체코필하모닉의 수장인 세묜 비치코프가 다음 달 한국을 찾는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때로는 침묵이 악마일 때가 있습니다. 예술은 내가 하는 나의 일이고, 난 그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말을 침묵하지 않고 소리내 말했습니다. 그저 인간답게 행동했을 뿐이에요.”

구소련 출신의 러시아계 ‘지휘 거장’ 세묜 비치코프(71)는 ‘금기’를 깬 ‘행동하는 예술가’다. 다음 달 체코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한국을 찾는 비치코프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비치코프의 발언에 세계 음악계는 일종의 ‘각성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이틀째 되는 날인 2월 25일 그는 러시아를 비판하는 장문의 성명을 냈다.

“악(evil) 앞에서의 침묵은 악과 공범이 되는 것이자 결국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성명에서 그는 인류를 비극으로 내몬 2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며 “역사는 잊혀질 때 되풀이 된다”고 강조했다.

거장 지휘자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비치코프는 “‘예술과 정치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금과옥조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언급은 정치가 아닌 전쟁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체코필하모닉의 수장인 세묜 비치코프가 다음 달 한국을 찾는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그는 냉전 당시 구 소련에서 태어났다. 러시아계 유대인인 비치코프는 전쟁이 가져다 준 비극의 한복판에 섰던 경험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은 그의 가족에게 참담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건 삶과 죽음, 인류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예요. 만약 길을 가다 누가 봐도 약하고 힘이 없는 자가 얻어맞고 있는 것을 봤다면 그대로 지나칠 건가요? 최소한 경찰에 신고라도 하겠죠.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인류애적 관점에서 인간답게 행동했을 뿐이에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대규모 학살입니다.”

비치코프는 127년 역사의 ‘동유럽 강호’ 체코 필하모닉의 수장이다. 20세에 라흐마니노프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1985년 리카르도 무티를 대신해 베를린 필하모닉 무대에 올랐다. 해마다 BBC 프로스 무대에 초대받는 등 세계적인 명장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그는 이번 한국 공연(10월 24일·예술의전당) 프로그램을 체코의 ‘국민 작곡가’인 드보르자크로 꽉 채웠다. 비치코프는 “체코 필은 투어 연주를 펼칠 때 꼭 체코필의 집인 루돌피놈 무대에 올리는 곡으로 한다. 훨씬 더 잘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드보르자크는 체코필과 깊고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드보르자크는 1896년 체코필이 창단할 당시 첫 음악회에서 포디움에 섰다.

체코필하모닉의 수장인 세묜 비치코프가 다음 달 한국을 찾는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프로그램 중 드로브자크 피아노 협주곡 G단조의 오리지널 버전은 무대에 자주 오르지 않는다. 비치코프는 “체코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상할 정도로 연주되지 않는 곡”이라며 “브람스와 베토벤을 합친 듯하면서도 여전히 드보르자크의 음악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피아니스트에게 어려운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국 공연에선 ‘일본의 조성진’으로 불리는 후지타 마오(25)가 협연자로 나선다.

비치코프가 이끄는 체코필은 체코 출신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를 명쾌하게 해석하는 악단으로 유명하다. 그는 “체코필은 전 세계의 몇 안되는 자신만의 색과 정체성, 음색, 음악성을 지닌 유서 깊은 악단”이라며 “이것이 체코필의 남다른 점”이라고 했다.

체코필은 이미 여섯 차례나 한국을 찾았지만, 그의 내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고 한국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체코필의 유럽 투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너무나 감명 깊은 연주였다. 조성진은 정말 대단한 음악적 파트너이자 훌륭한 사람”이라며 “나를 포함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그와 함께 한 시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국 공연을 앞둔 기대감도 높다. K-푸드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한국 음식, 유명하잖아요. 당연히 먹어봤죠. 이번 내한에선 서양에서 현지화된 한국 음식이 아닌 진짜 한국 음식을 먹어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어요.”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