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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키즈’ 수식어, 영혼 불어넣는 자극제 됐죠”
칸 영화제 호평 ‘잠’ 유재선 감독

“영화의 기대를 높일 수 있다는 면에서 (‘봉준호 키즈’라는 수식어가)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워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다른 한편으론 좋은 자극이 돼서 혼을 갈아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어요.”

영화 ‘잠’을 연출한 유재선 감독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키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것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옥자’의 연출팀 출신이다. ‘잠’은 그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지난 6일 개봉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를 누르고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손익분기점도 거뜬히 넘었다.

영화는 신혼부부인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의 일상을 덮친 수면 장애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수면 장애란 일상적인 소재를 공포 스릴러로 풀어 낸다.

“몽유병에 대한 괴담은 가끔 들은 적 있지만 이들을 지켜야 하는 가족과 배우자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보통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잠’은 공포의 대상을 지켜주고 공포를 정면 응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이 달라요.”

칸 국제영화제서 호평받은 유재선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효율적으로 제작됐다. 촬영 전체본의 95%를 영화에 사용한 것. 최종본에 사용하지 않은 장면은 단 하나 뿐이다. 그만큼 유 감독이 사전 준비에 철저하게 임한 셈이다. 출연 배우들 역시 유 감독이 시나리오부터 콘티까지 꼼꼼하게 준비했다고 입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유 감독은 첫 장편 영화였던 만큼 아쉬움은 있다고 털어놨다.

“촬영 초반땐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빨리 넘어갔어요. 그런데 테이크를 몇 번 넘어가면 배우들이 상상의 연기가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가지 않은 그 길이 나중엔 궁금해졌어요. 이미 훌륭하고 만족스럽지만 그 이상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거죠.”

‘잠’이 칸 영화제에 초청된 것에 대해선 “감사할 따름”이라며 “훌륭한 선배 감독들이 한국의 위상을 많이 높인 덕분”이라며 겸손함을 나타냈다.

그는 영화의 영문 자막을 누구보다 꼼꼼하게 챙겼다. 이는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 덕분에 가능했다. 유 감독은 3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거주했다.

유 감독은 영화 전공자가 아니다. 영화 입문 시기 역시 늦은 편이다. 대학 때 우연히 들었던 문예창작 수업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교수가 소개해준 여러 영화들을 접하고선 영화의 매력에 빠진 것. 이후 영화 제작 동아리에 가입해 단편 영화를 만들며 감독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엔 영화 연출팀에 들어갔다. 그 작품이 바로 봉 감독의 ‘옥자’였다. 유 감독은 봉 감독의 조언과 응원이 있었기에 ‘잠’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촬영 초반에 촬영본을 매일 확인하는데 맘이 울적해진 적이 있어요. 최선을 다했는데 후회만 보이더라고요. 이를 봉 감독님께 털어놓으니 자연스러운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셨어요. 그때 이후로 자신감을 가지고 임했죠. 봉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을 때나 편집본을 보여드렸을 때도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칸 영화제 초청, 순익분기점 돌파. 극장가 침체기 속에서 그의 연출가로서의 출발점은 그 누구보다 탄탄하다. 벌써부터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그는 차기작으로 미스터리 범죄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검토하고 있다. 유 감독은 그의 감독으로서의 삶이 ‘잠’과 같기만 바란다고 했다.

“원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과 100% 원했던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데뷔 감독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 희귀하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들었어요. 모든 경험이 ‘잠’ 같기만 하면 좋겠어요. 연출팀 막내부터 투자배급사 직원들까지 열렬히 응원해주고 그럼에도 감독으로서 존중받는 그런 경험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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