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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적 설움과 희망 담긴 42.195㎞…마라톤 감동 실화 ‘1947 보스톤’
‘제2의 손기정’ 서윤복의 삶
‘쉬리’ 강제규 감독 신작
하정우·임시완 열연…감동·재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 26년이 지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 손기정은 세계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땄다. 시상대에 오른 그는 손에 쥔 월계수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렸다. 그리곤 고개를 숙였다.

이는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국민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손기정은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로부터 강한 압박과 감시에 시달리며 마라톤을 그만둬야 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47년. 해방 직후 손기정은 후배 서윤복을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시킨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함께 동메달을 땄던 남승룡도 코치로 나선다. 서윤복은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을 보란 듯이 제압한다.

영화 ‘1947 보스톤’은 이러한 감동적인 실화를 감동적으로 재현했다. 영화는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흥행 신화를 썼던 강제규 감독의 신작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들의 보스턴행은 런던 올림픽에 한국 마라톤 선수를 출전시키려는 계획에서 출발한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가 국제 대회 출전 이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손기정의 금메달 기록은 일본의 기록으로 남아있었던 것. 이에 이들은 올림픽 전에 열리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을 생각해낸다.

그러나 보스턴의 여정은 그야말로 첩첩산중. 당시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 미군정의 통치를 받던 시기여서 해외에선 난민국의 지위에 있었다. 때문에 이들이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선 거액의 보증금과 현지 보증인이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증금과 보증인을 마련하지만,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보스턴을 갈 때도 미국 군용기를 타고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뉴욕을 거쳐야 했다. 보스턴에 도착해선 태극마크가 아닌 성조기가 달린 유니폼이 주어진다. 이는 공식적인 국가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시기였던 탓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듬해인 1948년에 수립됐다.

영화는 가난하고 힘 없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해야 했던 이러한 설움과 울분을 그대로 전달한다. 동시에 곳곳에 웃음과 감동 포인트도 잊지 않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 장면이다. 약 20분 간 전개되는 이 장면은 실제 대회를 지켜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장면 내내 계속되는 미국 중계진의 친절한 설명도 쫄깃함을 더한다. 특히 선두를 달리던 서윤복이 갑자기 난입한 강아지 때문에 위기를 맞는 순간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실제 대회 장면 촬영은 미국 보스턴이 아닌 호주 멜버른에서 촬영됐다.

임시완은 외형부터 내면까지 서윤복으로 거의 완벽하게 분했다. 말랐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단련된 몸, 불굴의 투지가 느껴지는 표정, 그리고 프로처럼 달리는 모습이 실제 마라토너의 느낌을 자아낸다.

임시완은 이를 위해 혹독한 식단 조절에 운동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의 체지방율이 한때 6%까지 내려갈 정도였다. 임시완은 전문적인 달리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한국 여자 마라톤 신기록을 세운 권은주 선수로부터 3개월 동안 전문 훈련을 받았다.

임시완은 “실존 인물이 계시다는 것 자체가 그 분께 절대 누가 되면 안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려고 했다”며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를 한다는 각오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정우는 세계 신기록의 보유자로서의 자부심보단 일장기를 가슴에 달아야 했던 설움과 죄책감을 안고 사는 손기정을 절제 있게 표현한다. 후배들을 가르칠 땐 엄격하고 남자답지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선 그 누구보다 애타는 심정으로 달리는 서윤복을 응원한다.

하정우는 “캐릭터를 맡으면 개인적으로 내 몸과 영혼과 마음에서 출발하는데, 손기정 선생님을 모르기 때문에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다”며 “매 순간 어떤 마음이었을지, 어떤 감정을 갖게 됐을 지 매 장면마다 생각하며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강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어 약 20년 만에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과거의 발자취를 알아야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감독은 “우리들이 살아왔던 과거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는 일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역사 속에 담겨진 훌륭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정말 바르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7일 개봉. 108분. 12세 관람가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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