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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승완 감독은 어떻게 대중적인 감독이 됐나[서병기 연예톡톡]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올 여름 텐트폴 영화 빅4의 흥행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가 누적관객수 447만명으로 500만명을 향하고 있어 빅4중 가장 선두주자다. 7월 26일 개봉해 개봉 3주차 주말을 보내고 난 후의 성적이 이 정도면 흥행력을 입증한 셈이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개봉 7일째인 15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15일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도 개봉해 여름흥행성적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21년전인 2002년 액션 느와르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를 보면서 류승완 감독이 “색깔 하나는 확실하게 있구나”는 생각을 했다. ‘선글라스’ 전도연(수진)과 ‘가죽잠바’ 이혜영(경선)의 서사를 액션과 함께 집요하게 끌고가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그 후 20여년간 영화를 연출해온 류승완 감독은 참 영리하다고 볼 수 있다. 완성도에서 비판을 받거나 흥행성적에서 참패한 적도 있지만 유연한 연출 감각으로 이를 돌파하며 히트작들을 남기곤 했다.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를 오랜 기간 기억하게 만든 2010년 영화 ‘부당거래’는 범죄드라마의 재미를 톡톡히 선사하며 류승완 감독을 대중적으로 알렸다.

2013년 ‘베를린’, 2015년 ‘베테랑’으로 승승장구하다가, 2017년 ‘군함도’에서 제동이 걸렸다. 대작은 빅히트를 할 수 있는 기회지만 리스크 또한 매우 크다. ‘군함도’는 수많은 극장을 차지해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에 비하면 최종 스코어는 659만명에 그쳤다.

하지만 류 감독은 2021년 ‘모가디슈’를 가지고 화려하게 컴백했다.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대한민국과 북한 공관 직원들의 수도 모가디슈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모가디슈’는 류승완 감독의 장기가 가장 다채롭게 발휘됐다. 액션, 서사구조, 코미디 등이 모두 제대로 구현돼 먹을거리가 많은 맛집이 됐다. 코로나19의 여파가 가장 크게 미쳤을 때임에도 최종 스코어가 361만여명이나 됐다. 평단으로부터 완성도 또한 크게 인정받아 2022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대상(류승완)을 수상했다.

류승완 감독은 비판을 잘 극복해나가면서 작품성과 대중적인 흥행을 동시에 성취해나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밀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대중 영화를 만드는 저 같은 사람은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열몇편의 영화를 만든 나에게 선입관이 생긴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지? 내가 저질러 놓은 필모가 ‘갈지자(之)’를 그리고 있다. 액션, 판타지, 코미디가 많고, 어두운 작품들도 많다. 왜 그렇지? 내가 해놓은 작업들에서 가능한 멀리 가고싶었다.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성공을 재탕하는 것이다. 나는 강박적으로 속편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베테랑2’는 만들었지만) 관객들이 익숙함과 새로움, 이 사이 어디에서 밸런스를 맞출 것인가를 항상 생각한다. 공식대로 하면 한두번은 잘되지만 그 다음은 침몰하는 거다. 매번 두렵다. 성공도, 실패도 한다. 경력이 쌓이니까, 안되면 다음에 잘된다고 낙관적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강박은 여전히 있다. ‘밀수’도 내가 안해본 걸 한다면 관객에게도 새로운 걸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하게 됐다.”

류승완 감독이 얼마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밀수’가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해녀들이 수중액션으로 빌런들을 처단하는 장면은 길어져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해녀들의 통쾌한 수중액션만 있는게 아니라, 권상사(조인성)의 좁은 공간에서의 나이프 액션도 볼만하다. 물론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 등 쌓아온 다양한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전개와 마무리가 아쉬운 면이 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성취이고 핵심 스토리라인은 충분히 살려 전달됐다.

“‘시동’을 찍으러 군산에 갔다가, 조성민 부사장이 군산 지역 박물관에서 19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는 사료를 발견했다. 박재식 작가가 쓴 여성밀수단의 얘기까지 합쳐져 ‘밀수’가 기획됐다. ‘모가디슈’를 만들때 아내인 영화사 대표(외유내강 강혜정 공동 대표)에게 연출의사를 밝힌 게 시작이다.”

류 감독은 70년대 밀수와 2000년대 밀수는 너무 다르다고 했다. 70년대 밀수품은 미제 카라멜, 바나나, 워커맨, 양담배, 라이방 선글라스, 청심환 같은 것들이었다면 요즘은 금괴나 마약 등 센 것들로 바뀌었다.

류 감독은 그런 70년대의 패션과 음악을 ‘밀수’에다 고스란히 입혔다. 류 감독은 “70년대는 멋있는 세상이지, 촌스런 세상이 아니었다. 사회적 금기를 강요당하고, 개인 자유를 구속했지만, 나에게 70년대는 안락하고 편하다는 것이다”고 했다.

류 감독은 두 가지를 꼭 말하고 싶다고 했다. 하나는 ‘밀수’는 꼭 여름에 봐야 한다는 것. “‘러브스토리’는 겨울에 봐야 하고, ‘아비정전’은 여름 열기속에 봐야 한다. ‘밀수’는 시원한 물속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름영화다. 일년중 바다에서 찍을 수 있는 날이 며칠 없다. 스태프들은 쾌속선을 타고 가지만 배우들은 통통배를 타고가야 했다. 여기에 70~80년대 대중가요가 쏟아진다. 음악은 일부러 과잉으로 흐른다. 권상사가 액션을 할 때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가 나온다.”

73년생인 류 감독은 당시 어른이 되면 멋있고 옷도 잘입고 모든 게 멋있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어른이 되고도 당시 판타지를 기억하고, 콘텐츠에 반영하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김혜수와 염정아가 OK를 하지 않을까봐 마음을 졸였다는 얘기였다.

“두 배우가 사무실에 와서 대본만 읽고 안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김혜수는 물에 대한 공포가 있었고, 염정아는 수영을 1도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렵게 결정해준 두 배우에 감사하다.”

류승완 감독은 “내가 흥행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되어버렸는데, 관객 한사람 한사람 반응이 중요하다. 사실 나는 하고 싶으면 한다. ‘모가디슈’도 어디 흥행요소가 있었나? 당대 별로라는 반응이 나와도 언젠가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한다”고 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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