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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북’ 논란 신평사는 억울하다…신용등급에 대한 오해와 진실 [투자뉴스 뒤풀이]

금융투자업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과거를 빨리 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5월 글로벌 시장을 뒤흔든 뉴스가 뭐였는지, 아마 며칠 전에 여쭸다면 대다수는 고개를 갸우뚱 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린 다시 알게 됐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공화당이 부채한도 협상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미국이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뉴스로 연일 도배되었죠.

가깝지만 오래된 기억을 꺼내준 건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의 다소 뜬금없는 미국 신용등급 하향 조정 소식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자신감 속에 경착륙은 피할 것이라며 장밋빛 앞날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죠.

피치는 왜 이 ‘지금’에서야 ‘과거’의 일을 끄집어 내 ‘앞날’을 어둡게 하는지, 신평사와 신용등급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EPA]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용평가사는 3곳입니다. 무디스, S&P, 피치입니다.

신평사는 비슷한 크레딧 리스크를 가진 채권을 하나로 묶어서 신용등급을 매깁니다. 각 채권에 신용등급을 매기기도 하고, 발행주체에 등급을 매기기도 합니다. 유통 중인 채권에서 부도가 나면 다른 채권도 자동적으로 모두 부도로 간주되는데 그런걸 cross default provision이라고 합니다.

국가나 지방정부, 기업 같은 발행주체를 대상으로 등급을 매길 땐 해당 주체의 전반적인 재정 상황을 감안합니다.

S&P와 피치는 신용등급 표기가 같지만 무디스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습니다. 보통 BBB- 보다 아래 등급이면 정크본드 혹은 하이일드라고 합니다.

그럼 왜 신평사는 등급을 매기고, 투자자는 그걸 찾아보나요?

채권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발행주체의 상환 능력입니다. 따박따박 쿠폰 지급하고 약속된 만기에 돈을 모두 돌려 받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바로 그게 크레딧 리스크라고 합니다. 이런 상환 능력을 평가하려면 적지 않은 전문성과 시간, 비용이 들어갑니다.

기본적으로 발행주체는 신용을 인정 받아 조달금리를 낮출수록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것이니 좋습니다. 발행주체는 이 때문에 실제보다 신용 상태를 부풀리려고 하는 유혹이 존재합니다.

반면 투자자는 금리를 다만 얼마라도 더 높게 받길 바라죠. 그러려면 정확히 신용상태를 평가해야 하는데, 일반인이 그 많은 채권과 발행주체를 일일이 들여다볼 순 없습니다.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누군가가 알기 쉽게 신용 상태를 평가해서 보여주면 좋겠죠. 신평사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시장의 정보비대칭 문제를 낮추는 셈이죠.

정확한 신용등급은 그래서 시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신용등급이 실제보다 높게 책정되면 발행주체는 이익이지만 투자자는 손해입니다. 실제보다 낮다면 그 반대죠.

▶그런데 피치는 왜 두 달 전에 이미 일단락된 문제를 갖고 이 시점에 문제제기를 한 것일까요?

이는 금융시장 주체별 역할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요합니다. 앞날을 예측하고 투자 추천 여부를 제시하는 건 증권사가 하는 일입니다. 신평사는, 일부 비재무적 정보를 감안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무정보를 바탕으로 발행주체의 건전성을 평가합니다.

재무정보라는 건 그 기업의 지금까지 활동 기록입니다. 당연히 후행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신평사는 신용등급과 함께 등급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후행성을 보완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본질은 ‘과거의 정보를 바탕으로 오늘’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A라는 기업이 초전도체 개발을 상용화하기 직전이라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A기업 주식을 강력 매수하라고 권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기업의 재무상태가 어땠는지, 수익성은 얼마나 좋았는지보다 앞날이 더 중요하죠. 반면 신평사는 A기업이 실제로 그 기술로 돈을 충분히 벌고 그렇게 해서 재무구조가 좋아지면 그제서야 신용등급을 올려줄 것입니다.

때문에 이번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이란 개별 결정을 놓고 뒷북을 쳤다고 비판할 순 있지만 ‘신평사는 늘 뒷북을 친다’라고 일반화해버리면 금융시장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

▶신평사 신용등급의 최대 장점은 심플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AAA등급이 BBB등급보다 좋다는 걸 알 수 있죠. 엄청 복잡한 크레딧 세상을 이보다 더 쉽게 보여줄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단점도 존재합니다. 신용등급은 상대적인 등급(ordinal rankings)입니다. AAA가 BBB보다 좋은 건 알려주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앞서 언급한 신평사의 본질적 성격인 후행성에서 오는 한계입니다. 시장 가격과 크레딧 스프레드는 즉각즉각 시장 변화와 발행주체의 상황에 따라 반응합니다. 대표적인 게 CDS프리미엄입니다. (CDS프리미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우울한 예언가 CDS프리미엄…美 CDS가 문제인 이유 [투자뉴스 뒤풀이]’를 참조해주세요)

때문에 같은 등급이라도 시장에서 수익률(yield)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레딧 리스크를 세분화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크레딧 리스크는 채무불이행, 즉 디폴트 리스크와 손실 강도(loss severity)로 구성됩니다. 부도가 날 확률이 높더라도 이로 인한 손실이 크지 않다면 크레딧 리스크는 낮을 것입니다. 반면 부도 날 확률이 아무리 적어도 손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면 크레딧 리스크는 높다고 평가됩니다.

시장 가격에는 채권 혹은 발행주체의 기대손실(Expected losses)를 즉각 반영합니다. 하지만 신용등급은 오로지 디폴트 리스크만 평가합니다.

또 신용등급은 정기적으로, 또 사안에 따라 바뀌긴 하지만 시장 가격이나 스프레드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디폴트 가능성과 괴리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채권 시장의 안정성이란 측면에서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신평사가 완벽할 수 없단 것입니다. 대표적인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온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신평사들의 후한 평가였습니다. 한창 유행하는 금융공학의 물결을 타고 숫자와 데이터로 매긴 등급은 실제 위험과 너무 차이가 컸죠. 신평사들은 그 뒤로 데이터, 재무정보 외에 비재무적 요소도 많이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신평사의 경고를 ‘때 늦은 잔소리’로 치부할 순 절대 없습니다. 아무리 후행적 지표라고 하더라도 현재까지의 정보를 종합했을 때 바로 지금 좋지 않다는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경고를 토대로 앞날을 바꾸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쨌든 경고음을 무시하면 앞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신평사는 무디스나 S&P 같은 글로벌 업체도 있지만 국내 업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업을 놓고 글로벌 신평사와 국내 신평사 간 신용등급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포스코를 한번 보죠.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모두 포스크에 대해 AA+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S&P는 A-로 평가했고 무디스는 이보다도 낮은 Baa1으로 등급을 매겼습니다. 전반적으로 국내 업체들의 신용등급이 해외 신평사보다 후합니다.

포스코 신용등급

같은 회사에 대한 다른 등급, 이유가 뭘까요?

국내 업체들의 편을 들어주자면, 국내 신평사들이 아무래도 해외 신평사들보다 우리 기업에 대한 이해와 정보 접근성이 더 좋을 것입니다. 정부 정책 등이 미치는 영향도 더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비재무적 기업 환경에 대한 고려를 할 때 유리하죠.

또 평가 방법상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용등급은 물리 실험에 따른 결과치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성을 최대한 살리겠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판단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국내 신평사들과 해외 신평사가 중점을 두는 항목이 다르고 가중치가 다르면 결과도 당연히 다랄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S&P와 국내 신평사 모두 ‘이익의 질’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주관적이죠. 최근 매우 강조되는, 피치가 미국 신용등급을 내릴 때도 언급한 거버넌스도 주관적인 평가 기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설명일 뿐입니다. 국내 신평사가 국내 기업에 후한 등급을 매기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기업 의존도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신평사는 신용등급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 기업을 고객으로 모셔야 하는 모순적인 수익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독립성 문제가 지적되는 이유입니다.

이에 비해 해외 신평사는 시장에서의 평판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정 기업 몇몇을 잘 봐줬다가 평가 능력이 별로라는 소리가 들리면 시장에서 금방 매장 당합니다.

사실 피치의 이번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매일 주요 경제신문에서 크게 다루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피치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진다면 그 책임을 피치가 뒤집어 써야할 것입니다. 반대로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간다면 헛발질을 했다며 평판 손실이 불가피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피치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입니다. 피치가 그걸 모를까요. 그럼에도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에게 경고장을 날렸습니다. 신평사의 생명과 같은 평판을 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신평사들도 평판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고, 해외 신평사들도 기업이 고객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해외 신평사들이 더 정직하고, 더 강단이 있어서 신용등급을 엄격히 매길 수 있는 걸까요?

이 문제는 우리나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매도 보고서를 쉽게 내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힘의 불균형 문제죠. 해외 신평사들은 시장의 필요에 의해, 시장의 효율적 발전을 위해 자생적으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평사는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정부 주도로 발전했습니다. 오죽하면 ‘관치 금융’이란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신평사나 증권사는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정확하고 객관적인 의견을 제공해 정보 비대칭성을 없애는 본질적인 역할보다는, 땀 흘려 돈을 버는 산업역군을 도와주고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증권사는 기업의 밝은 내일만 조명하고, 신평사는 한푼이라도 더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신용등급을 후하게 매기는 게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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