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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로서도 양보할 수 없다” 통 큰 제안에…평창 ‘의전배열’ 협상 타결
평창 개막식 좌석배치 힘겨루기…文 옆자리 요구한 北
2018년 도보다리 회담 불가 통보…“하루 전 입장 바꿔”
文전대통령 “나도 몰랐던 이야기…이제야 할 수 있는 말”
윤재관 전 靑국정홍보비서관, 저서 ‘나의 청와대 일기’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이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의전 배열’이 평창에 도착하기 10분 전에 극적으로 협상이 이뤄진 긴박했던 상황이 공개됐다.

또한 2018년 4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한 편의 무성영화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세계의 관심을 받았던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이 무산될 뻔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윤재관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저서 ‘나의 청와대 일기’에서 2018~2019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윤 전 비서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이 없이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5년간 의전비서관실·민정수석실 행정관, 부대변인(선임 행정관), 국정홍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고위험 시설 아래로 최고지도자가 걸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를 걷는 모습. 도보다리 위 고압선이 보인다. [연합]

당시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이었던 윤 전 비서관은 2018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답사를 하면서 남북 역사에 한 번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던 ‘도보다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고심했다. 이에 1953년 도보다리 중간 지점에 설치된 101번째 군사분계선 표지판까지 새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게 7일 만에 변형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4월25일 남북합동 최종 리허설에서 북측은 도보다리까지의 산책과 회담에 대해 “불가 의견”을 전달했다. 판문점 중앙에서 도보다리까지 200~300m 거리에 있는 유류 탱크와, 도보다리 위로 흐르는 고압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북측 의전담당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당시 “이런 고위험 시설 아래로 국가 최고지도자가 걸을 수는 없다”며 “도저히 안 된다”며 손사래 쳤다고 윤 전 비서관은 떠올렸다.

회담을 하루 앞둔 4월26일, 북측에서 도보다리 일정을 소화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 윤 전 비서관은 “북측이 왜 하루 전날 입장을 바꾸었는지는 지금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서도 “추측건대 김창선 당시 국무위원회 부장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의전 담당’ 北김창선…백두산 케이블카 추가 운행도
2018년 2월 9일 펜스 전 부통령 내외(오른쪽)가 문재인 대통령 내외,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함께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연합]

윤 전 비서관과 김 부장의 인연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 의전서열 1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과 함께 방남한 김 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한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평창행 KTX에 탔을 때 윤 전 비서관과 김 부장의 ‘좌석배치’를 둔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윤 전 비서관은 “개막식에 참석한 정상급 인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착석할 12석 자리를 ‘로열박스’라고 불렀다”며 “두 자리에는 대통령 내외분이 앉아야 했으니 나머지 9석으로 미중일러 4강과 북측 인사의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고 밝혔다.

북측에서는 의전서열 1위가 참석한 만큼 문 대통령 내외 옆에 앉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남측에서는 문 대통령 내외를 중심으로 언론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문 대통령 내외의 바로 뒷줄 왼편에 위치하면 많은 사진이 찍힐 수 있다는 점을 설득했다.

평창에 도착하기 10분 전, 윤 전 비서관은 “그냥 저를 믿어달라며”고 ‘통 큰 제안’을 했다. “얼마 만에 북측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저희가 설마 서운하게 모시겠나”라며 “이 자리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는데, 저희로서도 이건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라고 강수를 뒀다.

김 부장은 김여정 부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컨펌을 받아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신뢰가 시작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9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어졌다. 남북 정상이 백두산 일정에서 천지로 가기 위한 케이블카는 수용 인원과 시간적 한계로 인원을 선별해야 했다. 안내 업무를 마친 윤 전 비서관의 손을 이끈 것은 김 부장이었다.

윤 전 비서관은 “케이블카 운행은 오직 그만이 지시할 수 있었다”며 “덕분에 장관쯤은 돼야 탈 수 있는 천지행 케이블카에 행정관에 불가한 나와 후배들이 탈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文 전 대통령 “윤재관은 5년 내내 靑에서 함께 고생한 동료”
문재인 전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문 전 대통령은 SNS에 윤 전 비서관의 저서 ‘나의 청와대 일기’를 소개하며 “나로서는 무척 반갑고 고마운 책”이라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고 나도 몰랐던 이야기가 많다. 그때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 이제야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비서관은 5년간 청와대를 지켰다. 2020년 문 전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청와대 참모들은 총선 출마를 준비했고, 윤 전 비서관도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그 이유에 대해 윤 전 비서관은 2019년 5·18 경축사가 “내 인생의 진로를 바꿔버렸다”고 고백한다. “미안합니다”로 시작하는 그 해 연설에서 문 전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전 비서관은 “그 결심은 공직 사회 시한인 이듬해 1월까지 계속 흔들렸고, 동료들의 출마 소식과 주변 분들의 출마 권유가 이어질 땐 너무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대통령 연설을 듣고 출마를 접었다고 말하면 듣는 분들이 오해하거나 오버한다고 생각할까봐 본심을 말하기도 어려웠다”며 “소위 측근이 아니더라도 내가 담당해야 할 소임이 있으니, 대통령님을 모시고 끝까지 일해보겠다는 소신이 있어 버텼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는 가장 높은 직업의식과 직업윤리가 필요한 직장"이라며 "일이 많고 긴장되고, 고달프지만 오로지 보람으로만 보상받아야 하는 직장이고, 그 보람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국민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직장생활’을 소개한 책 ‘나의 청와대 일기’를 보고 “열심히 일했고, 달라지려 했고, 단 한 건도 금품과 관련된 부정비리가 없었던 당시 청와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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