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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보이지 않는 사람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귀밑 3㎝ 머리 길이, 무릎 위 치마 금지 등 규율을 어겼을 때는 여지없이 머리 잘림을 당하거나 나무 막대로 엉덩이를 맞곤 했다. 기억에 남아 있는 1990년대 흔한 학교 풍경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지금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동영상 촬영이나 녹음이 가능하지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시대가 변했음을 체감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체벌받은 학생이 경찰에 ‘아동학대’로 신고해 경찰차가 학교로 출동한 상황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아, 우리는 그저 잘못했다고 매를 맞아서는 안 되는 존재구나. 우리에게도 ‘인권’과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짜릿했으며 고무됐다.

그 후 사회에 진입하면서는 초·중·고교 내 선생과 제자 사이의 일에 관심 없었음을 고백한다. 다시 학부모로서 학교로 돌아온 2020년대. 사회가 변한 만큼 학교 역시 변해 있었다. 촌지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선생님들은 음료수 한 잔도 받지 않았다. 소위 ‘맞고 자라던 시절’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디지털기기로 채워진 아이들의 학업환경, 소득수준의 급격한 향상 등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많은 것은 선생님과 아이와의 관계를, 부모와 선생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었다. 가파르게 성장한 만큼 진통이 따랐다.

얼마 전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가한 사건을 필두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꾹꾹 겨우 눌러 담아 놓았지만 언젠가는 터지기 일보 직전인 그릇을 모른 채 한 결과다. 급격히 변화한 사회에서 공동체를 생각하기보다 나 자신이 먼저인 사고방식, 나 자신의 이익이 우선시되면 다른 것은 일단 눈감는 철저한 개인주의.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구성원과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탓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서비스 제공자들 등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자들이 점점 늘어났으나 우리는 외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답이 될 것인가. 교권신장? 학생인권? 양자 모두 사회의 발전과 함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최종 답은 아닐 테다.

학교, 가정, 학생을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나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다는 간단한 원리를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며 배려로 실천할 때 공동체가 탄탄해진다. 학교라는 사회의 한 영역을 예시로 들자면, 부모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최우선돼야 한다. 가정에서 제대로 되고 있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학교에 미룰 수 없고 국가가 이를 방관해서도 안 된다. 국가는 필요에 대해 최우선의 지원을, 부모는 이에 그 무엇보다 협조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한때 선생님이 그저 좋고 존경스러워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장래희망이었던 내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본다. 무엇보다도 공동체가 건강하게 존재해야 나와 내 아이의 삶이 있다. 비단 선생님뿐이겠는가. 수많은 돌봄노동자, 종일 여러 사람과 부대끼는 서비스직 종사자와 더불어 사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돌아볼 시점이다. 누군가의 갑질만으로 그 원인을 축소하기에 아직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균열과 차별 그리고 미성숙이 존재한다.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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