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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업성취도·사교육비·여성 고용 다잡은 독일[70th 창사기획-리버스 코리아 0.7의 경고]
독일 공립초등학교 전일제 운영 확산
3년 육아휴직→킨더가르텐→전일제학교
사교육 부담·경력단절 없는 ‘돌봄체계’ 완성
베를린 슈타켄의 공립 초등학교 크리티안 모르겐스턴의 카리나 예니혜 교장은 “베를린주 정부의 지원으로 전일제학교는 무료로 운영된다” 고 설명했다. 오른쪽 사진은 크리티안 모르겐스턴 보육교사 노박 씨가 전일제학교 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모습. 베를린(독일)=김영철 기자

우리나라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난해 기준 41만원이다. 통계청과 교육부가 발표한 금액이지만, 한국 부모 대다수가 이 통계를 불신한다. 자녀 1명당 교육비로 월 41만원 이상을 쓰고 있는 부모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 기준)으로 이 부문 전세계 꼴찌인 한국 성인남녀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교육’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19~4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출산 기피 이유를 물었더니, 미혼과 기혼 모두 ‘아이 양육 및 교육 비용 부담’이란 응답이 ‘경제적 불안정’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반’이 존재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엔 ‘사교육’이 흔치 않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만난 베를린 슈판다우구 슈타켄의 공립 초등학교. 그곳에서 만난 크리티안 모르겐스턴(Christian-Morgenstern Elementary School)의 카리나 예니혜 교장은 한국 부모와 정반대의 이유로 한국 사교육비 규모를 믿지 못했다. 예니혜 교장은 “이민자 자녀가 전체 학생의 90%를 차지하는 우리 학교 특성도 있겠지만, 독일에선 사교육이 흔치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독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낮다.

독일 전일제학교의 탄생도 낮은 학업성취도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0년 각국 아동·청소년 학력수준을 평가하는 PISA 조사결과, 독일 학생의 문해력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이하에도 못 미쳤다. 또 계층 간 격차가 학력수준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충격을 받은 독일 정부가 내놓은 게 전일제학교다. 지난 2003년 독일 정부는 ‘교육과 돌봄의 미래(IZBB)’라는 전일제학교 도입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25년까지 전일제학교 비중을 8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2020년 기준 초등학생 중 전일제학교 참여 학생 수는 130만명이 넘는다. 지난 2002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예니혜 교장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 수는 모두 580명. 전교생의 80%가량이 오후 4시까지 학교에 머무른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로 4학급으로 나뉘는데, 1개 학급의 학생들만 학부모의 요청에 따라 오전까지 학교에 머무르도록 한다. 그는 “2026년부턴 전일제학교 참여 학생이 더욱 늘어난다”고 했다. 지난 2021년 9월 ‘초등연령아동 전일제 촉원을 위한 법률’이 통과하면서 2026년부턴 초등학교 4학년까지 전일제학교가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2026년까지 4년간 35억유로(약 4조7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또 2030년부터 매년 13억유로(1조8500억원)를 주 정부에 지원한다. 공립 전일제학교는 이 돈으로 운영된다.

이 학교는 기본적으로 학생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필요한 것 대부분을 무료로 제공한다. 펜, 공책, 운동화만 개인이 부담한다. 교장은 “우리 학생 대부분 이민자 자녀라서 집에서 점심을 챙겨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공부방이 없는 아이도 많다”며 “부모가 돌봐주지 못하는 숙제도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정부가 당초 전일제학교를 도입한 목적인 ‘학업성취도’는 얼마나 향상됐을까. 예니혜 교장은 “전일제학교마다 제각각 ‘특성화’ 하는 분야가 있는데, 이민자 비율이 높은 우리 학교의 특징은 ‘독일어’”라며 “학생들이 하교를 하면 집에선 모국어를 쓰는 경우가 많아 독일어가 늘지 않았는데 전일제학교 시행 이후 독일어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뿌듯해 했다.

실제 2000년 PISA 학력 조사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냈던 독일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2018년 OECD 회원국 평균 이상으로 올라갔다. 특히 하위소득 계층 10% 이하 학생의 학력 수준이 향상됐다. 크리티안 모르겐스턴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 대표 킴벌리 하인리히 씨 역시 “두 명의 자녀를 전일제학교에 참여시키고 있는데,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과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비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이가 안전한 학교에 있어 부모도 안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일제학교가 ‘워킹맘’ 엄마들의 경력단절을 방지하는 데도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대 3년간의 육아휴직부터 취학 전 킨더가르텐(어린이집+유치원)을 거쳐 전일제학교까지 사회적 돌봄체계의 ‘완성’인 셈이다.

이는 특히 고학력 여성의 ‘계속 고용’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난달 20일 찾아간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렌주 보훔의 사립학교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 Schule Bochum)는 상대적으로 재정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다닌다. 이 학교에서 16년간 근무해 온 교사 아니키 쉬므르크 씨는 “우리 반 학생 학부모 35명 중 30명은 맞벌이”라며 “독일에서 전일제학교가 본격화되기 전인 15~16년 전에는 일하는 엄마가 훨씬 적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03년 하르츠 개혁을 계기로 근로시간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전일제학교가 시작되면서 경력단절을 우려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교육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이 대다수지만, 별도로 사교육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신 고학년들은 전일제수업을 통해 ‘보육교사’로부터 학습지도를 받을 수 있다. 쉬므르크 교사는 “전일제 수업은 오후 3시, 4시, 5시 클래스로 나눠어지는데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숙제 등 공부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 질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이 필수과목이라는 점”이라며 “학생들은 다양한 악기 중 하나를 선택해 배울 수 있고, 미술과 과학, 농업 등 다양한 창의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굳이 학교 밖 학원을 전전하며 막대한 사교육비를 쏟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일의 출산율 반등은 부모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해지는 시점에서 고용률과 출산율이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 이른바 ‘이행의 계곡’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행의 계곡이란 여성 경제활동률이 높아지면 출산율이 떨어지다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다시 출산율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정 교수는 “독일 사회는 ‘학교는 가르칠 뿐만 아니라 돌보는 공간’이란 인식의 변화에 성공한 것”이라며 “반면 ‘학원에 가면 학교에서보다 더 배운다’는 게 우리의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늘봄학교’ 논의 과정에서 독일 사회와 같은 ‘인식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독일)=김용훈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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