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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남겨진 자의 상처 치유법[이현정의 현실 시네마]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나도 자살한 거 봤어."

캐나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학생들.

불과 며칠 전, 이 학교에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성 교사 마틴 선생님이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그리고 하필 그 반 학생인 시몽과 엘리사가 이를 목격했습니다.

충격에 빠진 학교. 선생님들은 쉬쉬하고, 부모들은 모른 척 하기 바쁩니다.

반 학생들은 평소처럼 지내는 듯 하면서 이상한 행동을 보입니다. 한 학생은 선생님이 목숨을 끊었던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고, 다른 학생은 연일 악몽을 꿈꾸다 결국 전학을 택합니다. 시몽은 마틴 선생님의 사진에 천사 날개를 그린 뒤 품 속에 가지고 다니죠.

바시르 라자르 선생님.

마틴 선생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급히 채용된 대체 교사 바시르 라자르 선생님. 사실 그도 아픔이 있는 인물입니다. 알제리에서 표적 테러로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은 것. 아끼는 사람을 잃었다는 공통점을 가진 아이들과 선생님이 만난 겁니다.

'폭력'의 주제로 토론을 가진 어느 날, 엘리사는 맘 속에 품던 생각을 용기내어 내뱉습니다. 엘리사는 마틴 선생님을 유독 따랐고, 담임 교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매우 힘들어 했던 학생입니다.

"자상한 선생님들은 머릿니는 없는지, 충치는 없는지, 싸우거나 슬프지 않은지 늘 보살펴 주십니다.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마틴 선생님은 파란 스카프를 목에 매고 수요일 밤에 목숨을 끊으셨죠. 비행기 조종사인 엄마는 자주 집을 비우십니다. 엄마가 빨리 오시면 좋겠어요. 제가 요즘 많이 힘들거든요."

라자르 선생님은 엘리사의 발표 직후 아이들이 죽음을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학교 측에 요청합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폭력적인 조치라며 단칼에 거부하죠.

엘리사는 시몽을 향해서도 화살을 겨눕니다. 시몽의 거짓 고자질이 마틴 선생님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시몽은 자신을 포옹해준 마틴 선생님에 대해 "강제로 키스했다"고 학교에 거짓 신고했습니다. 학교 규칙상 사제 간의 스킨십은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시몽은 마틴 선생님의 죽음 이후 죄책감에 괴로워했습니다. 선생님의 사진을 품고 다니면서 말이죠. 그리고 뒤늦게 울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틴 선생님이 저 때문에 자살했대요. 고자질한 건 제 잘못이지만 엄마 같은 선생님은 싫었어요. 그냥 안아주셨는데 그게 싫어서...저 때문에 자살한 게 아니에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이 이야기는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라자르 선생님'입니다. 영화는 담임 교사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한 아이들이 상처를 밖으로 꺼내지도, 안으로 해결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대부분 난생 처음 경험하는 죽음의 여파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죠. 어떤 학생은 울고, 어떤 학생은 원망할 주체를 찾습니다. 그리고 라자르 선생님은 학생들이 상처를 치유하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영화는 캐나다 영화제인 지니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을 받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교내에서 담임 교사가 목숨을 끊은 일. 낯설지 않을 겁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죠. 교사의 자살 동기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합니다. 사회도 분노로 들끓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신규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체를 두고서 말입니다.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 인근 가로등에 학교에서 숨진 교사를 추모하는 메모지가 붙어 있다. 임세준 기자.

어른들은 그의 죽음의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 사회가 방조하거나 묵인한 것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내야 할 숙제입니다. 또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죠.

아이들은 지금도 교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하루 아침에 나타나지 않은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죄 없이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무조건 쉬쉬하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일까요? 어른들이 짊어져야 하는 고민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라자르 선생님 같은 존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라자르 선생님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시몽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교실은 집과 같은 곳이다. 여기서 우정을 쌓고 공부하고 예의를 배우지. 활기가 넘치고 인생을 준비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곳이다. 슬픔과 고통까지도 모두가 함께 이겨나가야 해."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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