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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어쩌다 스파이 됐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기반
“핵무기 의존 줄여야” 강력히 주장
한국어판 ‘원 월드 오어 넌’ 첫 출간

“이제 나는 죽음이, 세계의 파괴자가 된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등으로 할리우드 거장으로 우뚝 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 여름 ‘오펜하이머’로 돌아온다. ‘테넷’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소재는 핵 무기다. 영화는 미국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그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원자 폭탄의 아버지’다.

영화 제작비는 자그마치 1억 달러(1268억 원). 원자폭탄 폭발 장면도 컴퓨터 그래픽(CG) 작업 없이 그대로 재현했다. 킬리언 머피,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평범한 물리학 교수이었던 오펜하이머는 1942년 하루 아침에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극비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된다. 세계 곳곳에서 포탄이 오가던 당시 그는 “폭탄이 모든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며 천재적인 실력과 강한 리더십으로 원자폭탄 개발을 추진한다. 그리고 1945년 7월 14일, 미국 뉴멕시코의 사막 한 가운데서 작전명 트리니티 핵폭발 실험이 최초로 성공한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성취감보단 고민에 휩싸인다. 핵무기 보유가 미국의 안전을 지키기 보단 전세계에 위협이 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트리니티 실험 직후 두 개의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이 각각 사흘 간격으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4년 뒤엔 소련도 자체 핵실험에 성공했다.

“우리는 대단히 끔찍한 무기를 만들었고, 이는 세상을 한순간에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것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과연 과학이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후부터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는 핵 무기 자체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를 정부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만든다. 그는 결국 정적들에 의해 소련의 스파이로 몰린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카이 버드·마틴 셔윈·최형섭 옮김/사이언스북스

영화는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기반으로 한다. 저널리스트 카이 버드와 영문학·역사학 교수 마틴 셔윈이 쓴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로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사실적으로 다뤘다. 제우스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 개발로 애국했다가 냉전 시대에 몰아친 매카시 광풍에 휩쓸려 일종에 본보기로 추락하고 만다.

두 저자는 25년 동안 답사, 인터뷰, FBI 문서 열람 등 방대한 자료 수집을 거쳤다. 이 책은 2005년 출간되자마자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전기 부문을 수상하고 이듬해 퓰리처상 전기·자서전 부문도 받았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내달 영화 개봉에 앞서 특별판이 최근 출간됐다.

오펜하이머가 핵무기 철폐를 주장한 지 거의 8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핵 대결로 인한 공포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책은 오펜하이머가 1946년에 제안했던 핵무기 통제 계획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원자 폭탄이 일본에 떨어진 당시 핵 무기 확산을 우려한 것은 오펜하이머 뿐만이 아니다. 그를 비롯한 맨해튼 프로젝트 주역들은 당시 미국 과학자 협회를 긴급히 결성해 핵 무기의 영향력을 대중의 언어로 알리기로 결심한다. 핵무기를 탄생시킨 장본인들이 나서서 대중을 위한 ‘사용설명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 것이다.

원 월드 오어 넌 / 아인슈타인·오펜하이머 외15명 ·박유진 옮김/인간희극

각자의 지성을 짜내어 펴낸 것이 바로 1946년 출간된 ‘원 월드 오어 넌’(하나의 세계, 아니면 멸망)이다. 오펜하이머는 물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어빙 랭뮤어, 헤럴드 유리 등 노벨상 수상자들과 유명 언론인, 현역 미 공군 참모총장이 저자로 참여했다. 당시 이 책은 10만권 이상 팔리며 무차별적인 핵무기 확산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학 천재들의 브레인스토밍이 담긴 이 책은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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