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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권기옥과 코드롱
1924년 중국 윈난에서 권기옥이 단독 비행 후 찍은 사진
사진 뒷면에 적혀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에 보낸 편지[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는 권기옥(1901~1988)이다. 필자는 그를 기억할 때마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몇 장면을 떠올린다. 첫 장면은 1924년 중국의 운남육군항공학교에서 훈련기를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이다. 처음으로 단독 비행을 마치고 조종석에 앉아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그것인데 최초의 여성 비행사임을 이 장면이 증명하고 있다. 그가 타고 있는 비행기는 프랑스에서 개발한 ‘코드롱(Caudron) G.3’라는 기종이다. 사진의 뒷면에는 친필 편지까지 남아 있다.

편지는 도산 안창호 선생께 보낸 것이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비행기를 이용해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의지와 결기가 묻어나는 문장이다.

권기옥은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숭현소학교를 졸업하고 숭의여학교에 편입해 1919년에 졸업했다. 1917년 미국 비행사 아트스미스의 곡예비행을 관람하고 비행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졸업 무렵, 3·1운동 때에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유치장에 구류되기도 했다.

1920년부터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1923년 겨울 임시정부 요인과 중국 인사들의 추천으로 운남육군항공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1925년 항공학교를 졸업하고 비행적성검사에 합격해 명실공히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됐다.

그러나 그가 비행사로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에 중국 군벌 간 경쟁은 더 심화돼 자주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1926년 이상정(1897~1947)과 내몽골에서 혼인했는데 이상정은 후에 임시정부 공군설계위원회에서 이연호라는 이름으로 설계위원을 역임하기도 한 독립운동가였다. 그해 ‘개벽’지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 시인 이상화의 형이기도 하다.

권기옥을 기억하는 두 번째 장면으로 권기옥, 이상정, 이상화 세 사람이 1937년 남경에서 찍은 사진도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양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두 형제의 어깨에 양팔을 올리고 카메라를 부드럽게 바라보는 권기옥의 평온하고도 행복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1927년 상하이에서 장개석 진영의 항공사령부 비행사로 합류했고, 국민정부 수립 이후에는 난징(남경)에서 항공서 비행원으로 복무했다. 그는 국내 신문에 ‘조선인 비행가 중국혁명전선에서 활동’이라는 기사에 소개되기도 하고, 일제의 첩보에는 ‘남경 국민정부 항공서 비행사이자 의열단 여자부 연락원’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1935년에는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이 항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기획한 선전비행의 비행사가 됐다. 그러나 1936년에는 ‘일본 밀정’이라는 모함으로 옥고를 치렀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침략하자 1938년 충칭으로 이주했다.

광복 후 1949년에 귀국했고 1950년부터는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세 번째 장면은 6·25전쟁 중 전선을 누비는 모습이다. 권기옥 옆에는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참모처장이었던 최용덕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1943년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공군설계위원회를 발족하고, 1945년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을 작성한 바 있다. 또한 ‘한국연감’의 출판인으로 오랫동안 활약했고 한중문화협회 등에서 활동했다. 1988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서울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박물관에서는 역사적 항공기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권기옥의 훈련기 ‘코드롱 G.3’를 실물 크기로 복원했고 이를 공개하는 테마전시가 오는 8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방학을 맞아 권기옥과 코드롱 비행기를 주제로 한 연극도 선보일 계획이다.

3·1운동 이후 식민지 조국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안고, 한반도 평양에서 출발한 권기옥의 항로를 따라가 본다. 상하이·항저우·윈난·톈진·광둥·베이징·내몽골·난징·충칭·대만.... 다시 한반도와 조국의 분단! 그 여정 속에서 만난 인물들을 복기해본다. 노백린, 이동휘, 안창호, 이회영, 이시영, 여운형, 이상정, 이상화, 서왈보, 유동열, 지청천, 최용덕, 신익희, 딘 헤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긴 장마 속에서도 넝쿨을 뻗어 올려 꽃을 피우는 능소화 같은 인물이 권기옥이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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