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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론] 의견서값 3000만원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최근 5년(2018~2022년)간 국내 소송과 국제 중재 등 38건의 사건에 의견서 63건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적으로 매달 1건 이상 의견서를 작성한 셈이다.

권 후보자가 의견서를 쓰고 받은 총금액은 18억1563만 원이다(필요 경비를 뺀 소득 금액은 총 6억9699만원이라고 한다). 의견서 1개당 3000만원인 꼴이다. 대형 로펌 7곳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권 후보자가 의견서를 제출해 받은 대가는 그가 서울대에서 받은 근로소득보다 많다. 부업이 주업보다 쏠쏠한 셈이다.

권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고액의 소득을 얻게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제가 받은 보수는 일반적 범위 내에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견서 1개당 3000만원, 그리고 대학에서 받은 근로소득보다 많은 수입을 취하는 것이 어떻게 “일반적 범위 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과연 그의 행위가 국립대학 교수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의견서는 재판 당사자가 로펌을 통해 교수 등에게 의뢰해 사건과 관련한 법리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참고 용도로 제출하는 자료다. 중립적인 법원 감정 등과 달리 일방 당사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제출된다.

권 후보자는 “학문적 견해를 심화해 표명했을 뿐 일방 당사자를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학문적 견해를 부당하게 왜곡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사건정보와 의견서를 제출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한 마디로 검증은 거부하고 자기를 그냥 믿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제출한 의견서는 이미 재판 상대방에게 공개됐고, 관련된 사건이 확정됐다면 개인정보를 지우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공개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한 나라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검증 절차가 이렇게 허술할 수 있는지 답답하다.

한편 변호사법 제109조는 변호사 아닌 자가 금품을 받고 법률 사건에 관하여 법률 관계문서 작성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고액을 받고 의견서를 작성해서 재판부에 제출한 권 후보자의 행위는 변호사법 위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즉 교수가 공기관이나 기업으로부터 용역을 받고 연구 등을 하는 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더구나 현행법상 변호사가 로스쿨 교수가 되려면 휴업해야 하는 상황에서 권 후보자는 이를 잠탈하고 사실상 일방 당사자를 위한 변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견서 1개당 3000만원이 일반적 범위 내라고 생각하는, 변호사업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일방 당사자를 위한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자는 대법관의 자격이 없다.

만일 권 후보자가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대법관의 사회적 신뢰와 가치를 한없이 낮추는 것이다. 거액을 받고 일방 당사자를 위해 의견서를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하던 자의 판결에 대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권 후보자 임명 건은 여야 간 정치적 진영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권 후보자 임명안을 부결시켜 국민의 입장을 대변할 것을 요청한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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