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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뽕끼’는 영원한 대중문화 코드”
‘뉴진스의 아버지’ 프로듀서 250
하입 보이·디토 등 글로벌 히트곡 제작
첫 앨범 ‘뽕’,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
7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첫 단독공연
프로듀서 250

“뉴진스가 날 여기까지 이끌었네.” (‘뽕을 찾아서’ 댓글 중)

시계는 6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2017년 유튜브 ‘바나TV(BANA TV)에 올라온 UCC 재질의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 경기도 광명의 미리내 육교에서 출발해 동묘의 악기점, 영등포 사교댄스 연수원과 경남 EDM 파티로 발품 팔아 ‘뽕의 정체’를 탐구하는 여정을 담았다.

‘성지 순례’하듯 뒤늦게 영상을 찾아온 사람들의 댓글이 범상치 않다. “‘디토’(뉴진스의 히트곡)의 시작이 여기”라며 4세대 K-팝 시장을 평정한 걸그룹 이름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영상이 올라온 시점엔 “얼마나 명반을 만들려고 (이러냐)”는 댓글도 달렸다. 고속도로 테이프로 듣던 음악인 줄 알았던 ‘뽕’을 찾겠다는 과정이 무척이나 진지하고 학구적이어서다.

결국 명반은 나왔다. 2015년 시작돼 8년 만에 세상에 나온 ‘뽕’은 올초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등 4관왕에 올랐다. 영국 가디언은 이 음반을 “국제적 보물”이라고 했다. 그 기록을 간간이 담은 5년간의 로드무비 다섯 편은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진출했다. 그의 다큐멘터리는 K-팝 팬들 사이에선 ‘뉴진스를 찾아서’로 불린다. 250이 뉴진스가 부른 ‘어텐션’, ‘하입 보이’, ‘디토’ 등의 글로벌 히트곡을 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뽕’ 앨범을 낸 건 제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어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태어난 전, 이전에도 일렉트로닉 성향의 댄스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제게 한국인으로의 댄스음악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너무도 단순하게 자판기 돌리듯 ‘뽕짝’이라는 답이 나왔어요.”

프로듀서 250(41·본명 이호형). 그를 따라다니는 수사는 화려하다. ‘음악 프로듀서계 BTS’, ‘뉴진스의 아버지’…. 스스로는 “댄스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며 ‘명료한 설명’을 내놓지만, 이미 세상은 가장 빛나는 수식어를 붙인다. 일찌감치 보아, NCT127, 있지 등 세대를 아우른 ‘K-팝 장인’의 내면엔 ‘이박사부터 뉴진스까지’ 아우른 한국 대중음악의 집합체가 자리한다. 250이 그 오랜 시간 탐구한 ‘뽕의 본질’을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올해로 2회를 맞은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축제 ‘싱크넥스트’의 일환으로 열리는 ‘아직도 모르시나요’(7월 15일·S씨어터)를 통해서다.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첫 단독 공연은 ‘뽕’의 시대를 살아온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자리다.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

‘서태지 키즈’였던 250에게 뽕짝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그날의 기억이 8년을 찾아 헤맨 ‘문제적 음반’이 태어난 계기가 됐다.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뽕’은 나의 노스탤지어…‘아직도 모르시나요?’

“제가 처음 만난 뽕은 너무 빨라 마음이 안정될 틈을 주지 않는 음악이었어요. 조급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음악이었죠. 음악을 빨리 돌려서 나오면 이렇게 들리는 건가 싶었어요.”

‘서태지 키즈’였던 250에게 뽕짝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첫 뽕’의 기억은 어린시절의 귀성길. 산울림이나 팝 음악을 즐겨듣던 아버지는 고속도로를 달릴 땐 ‘뽕짝의 신’ 이박사의 음악을 들었다.

“어머니는 그 음악을 들으면 머리 아프다고 불평하시는데, 아버진 이걸 들어야 잠이 안온다며 고속도로에서만큼은 이박사를 들으셨어요. 그게 뽕짝과 이박사에 대한 저의 첫 기억이었어요.”

그날의 기억이 8년을 찾아 헤맨 ‘문제적 음반’이 태어난 계기가 됐다. 시작점은 이박사다. “고속도로 뽕짝의 창시자”다. 250은 “이박사는 뽕짝 하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름이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이름이었다”고 했다. 이박사로부터 출발한 ‘뽕의 여정’이 “너무 쉽게 가는 길”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박사를 외면한 채 뽕을 찾아갈 순 없었다”고 250은 돌아봤다. 음악 공유 플랫폼인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한 첫 번째 뽕인 ‘스프링’이 태어난 배경이다. 이 음악엔 이박사의 목소리가 담겼다.

‘뽕’이라는 장르의 음악적 탐구는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국인에게 뽕끼는 영원한 대중문화 코드”라고 했다.

“1970~80년대, 90년대까지도 한국영화는 ‘최루탄 영화’라고 불렸어요. 명랑하게 흐르는 청춘물인 줄 알았는데 여주인공이 죽어 눈물을 쏙 빼는 영화죠. 영화 한 편에서 희노애락을 모두 느끼고 싶어한 대중의 마음을 담은 거예요. 마무리는 무조건 슬퍼야 하는 이 ‘뽕끼’는 어느 장르에나 있었어요. 미팔군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이 한국 가요계로 데뷔할 땐 어김없이 ‘우는 음악’을 불렀고요.”

‘음악 프로듀서계 BTS’, ‘뉴진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듀서 250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그의 앨범 ‘뽕’의 근간이 된 것도 ‘슬픔의 정서’다. 그는 “‘뽕’이라는 앨범은 뽕짝 앨범은 아니”라며 “‘뽕끼’란 무엇인가에 대한 앨범”이라고 했다. 앨범은 ‘이박사의 프로듀서’인 김수일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아기공룡 둘리’를 부른 오승원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 안엔 음악가 250의 정체성과 그가 생각하는 뽕의 정서가 깊이 묻어났다.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 뒤에 가려졌던 프로듀서 김수일은 250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미공개곡 ‘모든 것이 꿈이었네’를 통해 250의 앨범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했다. “김수일 선생님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은 제게도 의미가 있었어요. 어쩌면 전 이 시대의 이박사가 아니라, 이 시대의 김수일이니까요.” 1번 트랙으로 자리한 이 곡을 시작으로 프로듀서의 정체성을 담아 앨범엔 “노랫말 없는 음악”들이 이어진다.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를 부른 오승원의 음악은 ‘뽕’의 마침표다. 250은 3년간 칩거 중인 그를 찾아 다녔다. ‘빙하 타고’로 시작하는 첫 소절만 들어도 유년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돌리는 노래를 담기 위해서다. 250에게 둘리는 ‘슬픔의 기억’이다. 그는 “둘리가 슬픈 것은 엄마를 찾는 외로운 아이이기 때문”이라며 “나의 우울하고 꿉꿉한 정서에 이 주제가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둘리의 목소리로 끝을 내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뽕’ 앨범은 어쩌면 저의 노스탤지어예요. 뽕의 핵심은 슬픔인데, 그것은 가벼운 춤을 추면서 뽕짝뽕짝할 수 있는 슬픔이죠. 막연히 좋았던 시절, 지나온 시절,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뽕짝의 정서예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 텅 빈 순간에 밀려오는 공허함 같은 것이 뽕짝 정서의 근원이이에요.”

프로듀서 250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250의 뽕…세계에서 통한 ‘뽕의 감성’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뽕의 감성’은 통했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놀라게 한 그의 음악은 일찌감치 해외로 향했다. 지난해 9월엔 독일 함부르크 리퍼반 페스티벌 무대에 섰고, 지난달엔 일본 투어를 마쳤다. 일본 공연에선 1969년생의 아저씨와 10대 소녀, 70대의 할머니도 찾아왔다.

푸른 눈의 독일 할머니도, 검은 눈의 일본 할머니도 두 팔을 올린 채 “160bpm의 빠른 속도의 음악에 맞춰 ‘고속버스 춤’”을 췄다. 음악의 속도가 160bpm까지 향하면 감상을 하기에도 리듬을 타기에도 너무 빨라 “춤을 추는 동작이 같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250의 설명이다. 사실 ‘뽕짝’의 속도는 현재 팝 음악계 트렌드인 ‘스페드 업(Sped up)’의 원조이기도 하다.

“뽕짝은 굉장히 친절한 음악이에요. 알기 쉽고 직관적이죠. 모두가 같은 춤을 춘다는 것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가 설명이 되는 친절함을 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음악은 몸을 움직이게 하지만, ‘슬픔의 정서’가 시시각각 침범한다. 250은 “오사카 공연에선 오열을 하는 관객도 봤다”고 했다. 하지만 슬픔에 머물지 않는 것이 250의 뽕이다. “멜랑콜리한 코드가 깔려 슬픔의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발리우드 영화처럼 얼렁뚱땅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프로듀서 250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가장 공들인 작업은 ‘요즘 시대의 뽕’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동시대 감각과 사운드로 매만지기 위해 고심한 시간이 길었다. 고속도로 음악이라 생각했던 뽕은 복잡다단한 장르였다. 어떤 것은 ‘무가’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경기민요’ 같기도 하다. 어떤 곡은 베를린의 클럽 한가운데로 리스너를 이끈다. 각각의 곡마다 “최소 다섯 번 이상 믹싱”을 거쳤다. 믹싱만 11번을 한 곡도 있다. 3~4년에 걸친 결과물이다. “사운드도 유행을 타기에 최신이면서 트렌드에 휩쓸려가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는 “현대적이면서도 당대에만 좋은 소리가 아니라, 언제 들어도 깔끔하고 목적에 맞게 들리는 음악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의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뽕을 찾아서’는 결국 나의 앨범을 찾아다니는 과정이었어요. 이 앨범을 만들기 위한 조각들을 모아 낸 음악이에요. 하지만, 이 앨범이 기존의 뽕짝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변화를 줬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뽕짝 음악은 언제나 원형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요. 이오공이라는 사람이 뽕이라는 것, 뽕짝이라는 것을 이렇게 해석했다는 거죠.”

‘뽕의 여정’은 한밤중의 무도회로 마무리된다. ‘아직도 모르시나요’는 250이 탐구한 ‘뽕의 여정’을 다시금 보여주는 자리다. 각각의 곡마다 ‘존재의 이유’와 아이디어를 담았고, 그 곡들이 ‘공통의 감성’으로 연결됐다. “뽕짝이면서 뽕짝이 아닌 음악”, “슬프면서도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으니, 공연은 ‘스탠딩 무도회’로 꾸며진다. 밤 9시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다.

“재밌을 거라는 기대는 좋지만, 뭘 해야 하는 공연도 알아야 즐길 수 있는 공연도 아니에요. 특별히 준비를 하거나,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그냥 와서 반응하면 돼요. 평소 이런 공연을 잘 보지 않는 분, 이런 곳에 잘 안 다니는 분들이 뽕을 체감하는 자리였으면 좋겠어요.”

다음 여정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다. 그가 즐겨듣던 음악적 취향이 투영된 음악이다. “한국인의 영원한 팝뮤직이 뽕짝이라면, 세계 대중음악의 근간은 미국 음악”이라는 생각이 시발점이 됐다. “250에게 팝 음악은 무엇이냐에 대한 이야기예요.” 아이디어 구상은 이미 몇 해 전 시작됐다. 이번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너무 고민하거나 생각을 많이 하면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메리카 음악이더라고요. 뽕은 멋있는 척을 하지 않았던 음악이라면, 이번엔 잔뜩 멋을 부린 음반이에요. 제가 좋아했던 것을 쿨하게 담으려고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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