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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플한 외관, 그속에 숨겨진 반전공간 [디자인플러스]
“재미없는 건물 싫다” 도심·건물 경계 지우기
“정릉 소요재·삼성 아치쌓기·영천 완산뜨락
“미니멀-멕시멀 한공간 연출 숨은 볼거리 제공
요앞 건축사사무소가 있는 성북구 정릉동 소요재 건물 [요앞 건축사사무소 제공]
외벽의 질감을 적극 활용한 프로젝트는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아치쌓기’ [요앞 건축사사무소 제공]

자유롭게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는 곳. 성북구 정릉동 한적한 주택가에 지어진 요앞 건축사무소 건물 ‘소요재(逍遙齋)’는 겉으로 보기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들어서면 재밌는 경험을 안긴다. 밖에서 봤을때 단순한 건축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숨겨진 공간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내용물은 다양한 종합과자선물세트 같다랄까. 건축물에도 ‘볼매(볼수록 매력있는)’가 있다면 이런 건축물일 게다.

요앞 건축사무소는 2013년 김도란 소장과 류인근 소장 두 사람의 체제로 출발했다. 사무소 이름의 의미를 묻자, 무겁게 느껴지는 건축보다는 내 집 앞 자주 드나들수 있는 건축사무소를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했다. 이어 2019년 영국 런던 예술대학교 석사를 마치고 돌아온 정상경 소장까지 합류해 현재의 체제가 완성됐다.

지난달 26일 정릉동 소요재에서 이들을 만났다. 정상경 요앞 건축사무소장은 “인터뷰 장소를 이곳으로 택한 이유도 우리의 건축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소요재 처럼)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봤을 때, 또 안에 들어갔을 때 전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건물을 짓고 싶다”고 했다.

요앞의 건축은 첫눈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공간을 경험하고 나면 복잡하게 느껴지는 건물이 많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건축 첫 단계에서는 최대한 단순하게 접근하고 한눈에 읽히기를 원하지만 큰 형태가 완성되면 계단, 개구부, 벽체, 난간 재료 등 각각의 요소들을 해체해 디자인한다. 그리고선 다시 하나로 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김 소장은 “복잡한 도시 속 겉으로는 단순하지만 재미없는 건물은 피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요앞건축사사무소 류인근, 김도란, 정상경 소장(왼쪽부터) [요앞건축사사무소 제공]

실제 소요재에는 숨겨진 내부 공간이 많다. 길에서 봤을때는 단순한 큐브 모양의 건물이지만 각층에는 중정공간, 테라스, 앞마당 등 여러 공간아 기획돼 있다. 이런 공간을 재밌게 둘러볼 수 있게 하기 위해 과감히 계단실도 없애버렸다. 일반적인 건축물에 있는 계단실은 사라지고, 건물에 어울리는 동선을 만들었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오르고 나면 건물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게 했다. 북한산자락을 따른 정릉동 산책길이 건물 안에도 있는 셈이다.

소요재를 지으며 가장 먼저 염두에 둔 점은 ‘경계 지우기’였다. 건물이 위치한 정릉동 주택가는 아직 단독 주택이 많이 남아있는 한적한 서울의 옛 동네다. 경사지에 있는 주택들은 길에 석축과 담장을 높게 쌓아둔 집들이 많다. 그래서 요앞 건축사무소는 역으로 골목 어귀에 놓인 소요재 부지를 주민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겉에서 봤을때는 1층인 지하를 담장을 쌓기 보다는 건물 안쪽으로 집어넣어 골목을 크게 보이게 하는 효과까지 노렸다.

‘도시와 건축물의 관계 속 도시에 보탬이 되는 건축물’. 이를 위해 건축물의 경계를 지우고자 한 시도다. 이런 그들의 시도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공공프로젝트로 진행된 ‘완산뜨락 주민소통방’에서 절정에 달한다. 과거 노인정이었던 땅에 새로운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짓는 프로젝트였다. 길과 맞닿은 마을의 공용 공간을 누구나 친근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대지면적 137㎡ 작은 땅에 마을 주민 모두가 건축주가 되서 달려들었다. 도서관, 노래방, 까페, 기원, 체육관 등 제각각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정 소장은 “일반적인 건축물의 설계가 4개월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이 건물은 1년이 넘게 걸렸다”면서 “마을 주민 수십명을 전부 모아 워크숍을 수차례 진행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한된 공간안에 담아야할 컨텐츠가 많은 만큼 이를 정제하고, 집적화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었다. 이들은 완산뜨락 역시 소요재 처럼 부지가 놓인 골목을 유의깊게 살폈다. 부지가 위치한 곳은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사거리의 모퉁이로 주민들의 왕래가 매우 잦은 곳이었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모여서 수다를 떠는 사랑방이, 동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고 운동장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간식이라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어르신들이 길을 걷다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툇마루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툇마루 위에는 비가 올때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를 만들어 건물이 한층 동네주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했다.

건물부지 한켠이 예각(직각보다 작은각)이라는 점 또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주민 소통공간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요앞은 곡면을 적절히 섞었다. 정 소장은 “완만한 산이라는 뜻의 완산동 속 예각은 편안하고 따뜻한 인상을 주기에 피해야할 부분이었다”면서 모서리 부분을 둥근 곡선으로 표한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이 자주 머무르는 동시에 자동차도 많이 다닌다는 점이 우려됐다. 그래서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건물 앞 길에는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횡단보도 모양의 일자 선형 패턴을 그렸다. 일자선형 패턴에는 일반 도로의 중앙선 느낌을 주는 노란선도 포함시켰다. 실제 횡단보도 문양을 길에 그려넣자 일반 차들이 잘 가다가도 근처에서는 속도를 줄이는 광경이 보였다. 외부에는 마을을 밝히는 건물이 되고자 하는 의미로 밝은 색상의 벽돌을 사용했다. 노출 콘크리트 보다는 벽돌들이 쌓인 입면을 나타내는 것이 따뜻한 건축물의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마을 대부분의 건물에서 쓰이는 적벽돌에 대한 친근감도 무시할 수 없어 적벽돌은 내부 인테리어를 쓰는데 활용했다.

외벽의 질감을 적극 활용한 프로젝트는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아치쌓기’ 건물도 마찬가지다. 고급 주거지인 삼성동에 눈에 띄는 건물을 짓기 위해 요앞건축사사무는 각 층별로 외장재를 다르게 했다. 1층에는 패턴콘크리트, 윗부분은 거친 질감을 갖는 어두운 색감의 묵직한 벽돌, 반듯하고 매끈한 회색 벽돌과 백색의 가까운 밝은 벽돌 등을 층별로 나눴다.

저층부에 적용된 패턴 콘크리트는 거푸집에 합판을 가로로 일정 간격으로 배치했다가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생된 후 탈락시켰다. 합판을 철거하며 콘크리트 양각 부분의 패턴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합판의 질감 및 표피가 콘크리트 면에 남기도 하면서 거칠고 오래된 느낌을 냈다. 이를 통해 따뜻한 질감의 표면이 완성됐다. 류 소장은 “거리를 걸으며 시선이 닿는 건물의 입면은 마치 거기 오래 있었던 듯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이길 바랬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요앞건축은 그간의 행보를 담아 최근 책도 발간했다. 그들이 작은 교회 건축을 하면서 느꼈던 점을 가볍게 적은 ‘낮은 교회로의 여정’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건축서적이지만 일반 에세이처럼 쉽게 읽어진다. 정 소장은 “평소 관심이 많던 종교 건축물에 대해 10주년을 기념해 책을 내봤다”고 했다. 서영상 기자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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