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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영 칼럼] ‘킬러 문항’ 만드는 머리, 교육수출에 쓸 때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K-팝 교육과정을 우송대와 협력해 해외 대학에 소개하는 자리에 모인 베트남 현지 학생들 [㈜위두 자료]

필자의 첫 일터는 종합상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수출로 먹고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이었기에 대기업 그룹사의 대표 회사였고 취업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신입사원이 바라볼 수 있었던 종합상사의 선배들은 멋있었고, 하는 일의 경계도 없었다. 내 주위에서만 해도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협상하고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뉴욕에서 옷 파는 사업부도 있었으며, 러시아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선배도 있었다. 일본 종합상사는 불법이 아니라면 ‘연필에서 로켓까지 다 판다’는 말이 있었지만 한국의 종합상사도 거의 모든 것을 해외에 팔거나 사고 있었고, 신규 사업을 개발하는 업무를 하던 필자도 반도체 소재에서 인터넷사업 기획까지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시도했다.

종합상사가 불법이 아님에도 건드리지 않는 분야가 있다는 걸 교육 분야에 와서 알게 됐다. 교육 분야는 초·중·고교 사교육만으로도 20조원 시장에 달한다고 하며, 성인교육시장이나 100조원이 넘는 교육부 예산까지 고려한다면 관광, 게임, 음악 등 웬만한 서비스산업 분야보다 더 큰 시장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 교육시장은 2022년 3조1737억5000만달러에서 2023년 3조4212억6000만달러로, 연평균 복합성장률(CAGR)이 7.8%로 성장하는 분야다. 이 정도 돈이 도는 분야지만 종합상사에서 교육상품을 다루는 부서가 없고 제대로 된 수출부서가 있는 교육회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 대학에서는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해외에 사무실이 있는 학교는 드물다.

며칠 전 호주 사설 유학원의 한국 사무실 론칭행사에서 호주대사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나온 공무원을 여럿 만나게 됐다. 호주 교육 서비스나 콘텐츠 등을 수출하기 위해 공무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호주 정부는 교육산업을 자원산업, 농축산업, 관광산업과 함께 국가 4대 주요 산업으로 인식해 온갖 지원과 장려를 하고 있다.

교육을 산업으로 보는 시각에는 저항도 있을 수 있고, 산업화로 인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특히 국내 초·중·고교 교육에서의 산업화는 사교육시장의 증가가 연상되고 그로 인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산업화를 피하기에는 우리가 잃는 것도 많지만 그 혜택도 커서 언제까지나 뒤로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인 18세기까지는 토지와 노동만을 생산요소로 간주했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생산요소의 범주에 토지와 노동뿐만 아니라 자본이 포함됐다. 기업은 가계로부터 생산요소를 구매하고, 가계는 기업에 생산요소를 판매한다. 따라서 생산요소의 가격은 기업으로서는 비용이 되지만 가계나 국가에는 소득의 원천이 된다. 무엇보다도 과학이 적극 활용됐다.

지금까지의 교육 분야는 교실과 선생님이라는 구성요소 외의 자본요소나 과학이 다른 분야만큼 많이 들어와 있지는 않다. 민간교육시장이 크기는 하지만 몇몇 회사를 제외하고는 기업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며, 규모가 좀 있는 회사 역시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에 맞춰 필요한 최소한의 연구·개발(R&D)을 하는 정도이지, 길게 장래를 보고 투자나 연구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의료와 마찬가지로 자본요소가 잘못 들어올 경우 교육의 공정성이나 공평성을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부분이 있는데도 이 시점에서 왜 자본이나 산업화라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것일까?

첫 번째로 교육 분야가 국경이 없어지고 있어서다. 과거 전교 1등이라면 물리학과에 진학할지, 법과대학에 진학할지를 두고 전공을 고르는 수고가 있었지만 대학은 고민 없이 서울대였다. 하지만 점점 내 인생의 목표를 위해서 서울대가 좋을지, 도쿄대학이나 하버드대학이 좋을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고객님’인 고등학생들이 우리 대학 중 어떤 곳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동안 ‘고객님’들은 나에게 더 좋은 대안이 없는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해외 유학생 수는 해마다 10%씩 늘며 전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 500만명 가까이였던 국제 유학생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는 2025년까지 8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유학 목적지도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국제교육시장에는 캐나다(외국 유학생의 5%), 일본(4%), 러시아(4%) 및 스페인(2%)과 같은 새로운 지역이 유학 목적지로 의미 있게 등장했다. 동시에 과거 인기 있던 국가들의 시장 점유율은 감소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유학생 비중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23%에서 17%로 감소했다. 시장 점유율이 줄었다는 것은 유학생 수가 줄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학교 수요 증가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학교나 외국 교육기관 등으로 분류되는, 미국이나 영국 등의 교육과정 등을 중심으로 국내외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정부 규제 때문에 늘어나는 것에 한계는 있지만 국내에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각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막지만 않는다면 계속 폭발적으로 느는 추세다.

국제학교의 역사는 해외 주재원이나 외교관 자녀가 해외 거주 동안 자국의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학교가 위치한 국가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된 상황이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8709개였던 국제학교가 2023년 1만3192개로 늘어났다. 재학생 수는 426만명에서 651만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국제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 수는 40만명에서 62만명으로 증가했고, 등록금 수입도 34억달러에서 62억달러로 많아졌다. 국제학교 수요가 이렇게 증가한 것은 비영어권 국가에서 자국의 교육부가 설계한 교육과정보다 더 좋은 교육과정이라고 믿는 부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와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들에서 국제학교 출신들에 대한 선호가 커진 것도 원인이 된다. 또 다른 원인은 국가나 기업 등에서 보는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인재상이 비슷해지면서 교육과정도 비슷해지고 있기에 수요자로서는 단순 비교가 가능해졌다.

해외 유학이 늘거나 해외 교육기관이 우리 주변에 생기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교육 수요와 공급이 한 국가 안에서만 이뤄지던 시대가 이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대와 국내 상위권 대학 여섯 곳에 합격한 한 지방 학생이 국내 대학이 아닌 미국 미네르바대학에 진학한 사례가 언론에 소개됐다.

국경을 넘는 데에 장애요소는 ‘비용’과 ‘언어’였지만 에듀텍(Edutech)의 발전으로 이 장벽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교육 소비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교육을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랭킹이 높고 인지도가 높은 교육기관이 에듀텍으로 무장하고 저렴하고 언어장벽이 없는 교육과정과 학위를 제공할 때 버텨낼 수 있는 한국 대학이나 교육기관은 얼마나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실제로 2017년 미국의 유명 대학인 퍼듀(Purdue)대학은 온라인 영리 대학인 카플란대학을 인수했다. 퍼듀 온라인에서 박사를 포함한 학위를 울릉도에서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쟁이 없던 시대에서 경쟁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같은 시대흐름 속에서 투자와 연구, 마케팅 등 민간의 과학적이고 산업적인 접근 없이 정부의 위대한 영도력만으로 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다면 일부 기능에 대한 산업화는 필수적이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부터 28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ISTE 2023 전시회’는 교육기술 분야의 최신 트렌드와 혁신적인 제품들이 대거 선보였다. 올해는 교사, 교육관리자, 교육기술기업 관계자 등이 참석한 전시회로, 10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했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기업이 미래교육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 서비스를 소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참가했다. [필자 제공]

둘째로 교육에 기술과 과학이 개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교육에 필요한 기술은 칠판과 책상을 만드는 목공과 책을 만드는 인쇄술 이외에 별다른 공학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가속화된 기술과 과학의 도입은 선택이 아닌 상황이다. ‘틱톡’ 서비스를 운영하는 바이트댄스 창업자 장이밍을 몇 년 전 만난 적이 있다. 몇 년 전인데도 에듀텍에 관여하는 사내 인력이 1만명이 된다고 했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아닌 세계적인 IT회사에서 교육 분야를 사업영역에 넣지 않는 회사는 찾기 힘들다. 카카오나 삼성, 네이버는 교육 분야에 의미 있는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초·중·고교생뿐이 아닌 모든 인류가 변화하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인 시대가 됐는데 그 수요를 기술 도입 없이 채울 방법은 없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인재와 자본 투자 없이 양질의 교육이 담보되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높은 연봉의 개발자를 수백명, 수천명씩 고용해 교육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는 기능은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코로나 시기에 교사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다양한 에듀텍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나 줌 같은 도구가 우리의 에듀텍 제품보다 더 많이 사용됐다.

예산과 인재 확보의 경쟁 시대가 온 것이다. 인공지능 수학선생님은 전 세계에 가장 우수한 한 명만 있어도 될 것이고, 메타버스학교는 처음에는 어마어마한 건축비용이 들겠지만 두 번째 학교부터는 큰돈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학생 수에 비례해 교사와 학교가 필요했을 때와 달리 우수한 기술 하나를 모든 교육기관이 쓰게 될 가능성이 큰 시대가 오고 있다. 산업화와 자본논리에 대한 부작용은 있겠지만 모든 에듀텍이 외국에 종속됨으로 인한 부작용과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한국이 강한 몇몇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산업은 우리에게 좋은 먹거리가 될 수 있기에 산업화를 고민하게 된다. 2023년 3조4000억달러로 예측되는 세계 교육 서비스시장과 콘텐츠진흥원에서 추산한 세계 게임시장 2000억달러를 비교하면, 게임산업진흥원은 있는데 교육산업진흥원이 없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전 세계 교육은 모두 공급 부족 상태다. 한국이나 선진국은 미래를 가르칠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우리보다 저개발국가는 교사가 부족하다. 인공지능이나 반도체 K-팝, e-스포츠 등 기존 학교에서 안 가르치던 분야는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이 같은 미래 분야 교육은 항상 공급이 부족하며 앞으로도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 이웃 국가가 경제발전을 하면서 학교와 교사가 얼마나 부족한지 우리는 옆에서 지켜봤고, 이런 현상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프리카에 저렴한 대학교육을 보급하고자 하는 교육 스타트업이 큰돈을 투자받은 것은 자본이 시장의 성장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저개발국가와 선진국을 동시에 경험한 국가로서 미래도 가르칠 수 있고 과거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한국이 미래 교육 모델을 선점한다면 그 영향력은 지구 전체적으로 클 것이다.

물건을 잘 팔고 있지만 항상 고질적인 서비스수지 적자 국가에서 교육 서비스나 에듀텍 제품을 수출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교육 분야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한 분야다. 인구에 비해 대졸자가 많다는 상황이 교육산업의 수출에는 장점이 될 수 있다. 단순한 경제적 효과를 지나 세계를 가르치는 ‘스승의 나라’라는 국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대학 때 일본 유학파 교수는 일본 장비로 실험하고, 미국 유학파 교수는 미국 장비로 연구하는 것을 봤다. 한국의 임 플란트 제품으로 실습하면서 치과대학을 다닌 베트남 치과의사는 졸업해서도 계속 한국 제품을 사용할 것이다. 교육 수출은 다른 산업과 보이지 않는 시너지 효과가 크다. 중국이 하드웨어 중심의 일대일로를 하지만 우리는 문화와 교육으로 일대일로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킬러 문항’을 만드는 머리와 정치적으로 싸우는 가슴을 한국 교육을 수출하고 한국이 발전하는 데에 사용했으면 좋겠다. 교육종합상사나 교육산업진흥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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