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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어주고 끌어주고...‘글로벌 반도체’ 점령한 대만계
엔비디아 젠슨 황, AMD 리사 수
끈끈하게 연결돼 상호 전폭 지원
대만정부, 산업 초기부터 산파역
기업 필요한 인재 양성 적극 나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대만이 자리하고 있다. 대만은 정부 주도의 전략적 접근을 기반으로 파운드리(위탁생산), 팹리스(설계)와 후공정 등 반도체 전 분야에 걸쳐 생태계를 탄탄하게 구축한 데다 대만계 경영진의 끈끈한 인맥도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숨은 힘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영진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만 출신이 상당수다. 이들은 고국의 반도체 업계 발전을 염두에 두고 상호 지원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차세대 AI 칩을 세계적 수준의 제조공정 기술과 방대한 생산 능력, 놀라운 유연성을 갖춘 TSMC에 계속 위탁생산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그는 양안 갈등에도 “대만에서 우리의 모든 공급망에 대해 논의할 때 매우 안심이 된다”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4·14면

대만 타이난 출신의 젠슨 황은 AI 시대 필수품으로 꼽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개발한 인물로 엔비디아 창업 30년 만에 회사를 기업가치 1조달러(1272조원) 반열에 올렸다. 그는 창업 후 생산 위탁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만 인맥을 활용해 TSMC의 장충모 회장과 만났고 이후 30년 가까이 엔비디아와 TSMC는 한몸처럼 움직이며 반도체 성능 향상에 매진해왔다.

최근 새로운 AI용 GPU ‘MI300X’를 출시하며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내민 미국 AMD의 리사 수 CEO는 젠슨 황 CEO의 조카뻘이다. 수 CEO는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대다. 그 역시 대만 인맥을 통해 TSMC와 두터운 관계를 맺었고 TSMC의 기술력을 활용해 중앙연산처리장치(CPU) 분야에서 미국 인텔의 점유율을 빠르게 빼앗고 있다.

이 외에도 지난해 AMD와 합병한 자일링스의 전 CEO 빅터 펭도 대만 출신이다. AMD는 자일링스 인수를 통해 AI 사업 성장을 위한 광범위한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대만계 인사들의 활약에 힘입어 대만 반도체는 전 세계 반도체에서 경쟁력이 커지고 있다.

국제무역센터(IT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반도체 수입 시장에서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11.7%로 미중 통상 갈등이 시작된 2018년(30.2%) 대비 18.5%포인트 하락했다. 이 빈자리를 대반 반도체 기업이 빠르게 흡수했다. 대만은 같은 기간 미국 시장 점유율이 9.7%포인트 증가해 4위에서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미국이 대만에서 수입한 컴퓨터 등 부품 금액은 같은 기간 75억6000만달러 늘어나 4배 이상 폭증했다. 한국도 미국 시장 점유율이 1.8%포인트 증가했지만 대만과는 비교가 안 된다.

대만 반도체 산업이 TSMC를 위시한 파운드리로 대표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대만은 반도체 업계의 전 공정에 걸쳐 핵심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 75.7%를 차지하는 파운드리 분야에는 1위 TSMC뿐 아니라 UMC(2위), PSMC(6위), VIS(7위), WIN(10위) 등 10위권내 다수가 대만기업이다.

이들 업체는 단순한 경쟁자라기보다는 동업자에 가깝다. 수익성이 높은 미세공정은 TSMC가 가져가고 난이도가 낮은 일반 공정은 UMC 등 다른 기업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UMC는 2018년 14nm 이하 공정 개발을 중단한 대신 22·26nm 공정에서 수익 절반 이상을 거두고 있다.

대만은 반도체의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분야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텍은 지난 1분기 스마트폰 모바일프로세서(AP) 시장점유율 32%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부터 연간 기준으로 퀄컴을 제치고 1위에 입성했다. 팹리스 분야 전체로는 4위다. 노바텍(4위)과 리얼텍(7위)의 시장점유율을 모두 합치면 대만 기업은 전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 21.4%로, 2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 반도체의 진짜 역량은 패키징과 테스트 등 후공정 분야라는 평가를 받는다. TSMC가 팹리스 업체에서 반도체 생산을 위한 턴키 솔루션을 제공하며 고객사를 확보하면 후공정 업체들이 참여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대만 후공정 업체 1위인 ASE는 지난 2021년 웨이퍼 레벨 패키지(WLP)와 시스템 인 패키지(SiP)에 20억달러(2조2224억원)의 시설 투자를 발표하는 등 시설 투자에 있어 앞서나가고 있다. TSMC는 후공정 업체의 기술적 역량에 기반해 지난해 3월 고급 패키지 기술인 SoIC(system On Intergrated Chips)를 AMD의 고성능 CPU 양산에 처음 적용했다.

무엇보다 대만은 정부가 나서 초창기부터 반도체 산업의 ‘산파’ 역할을 자청했었다. TSMC는 사실 대만 행정원 소속의 산업기술연구회에서 전액 출자한 공기업이었다. 1987년 출범한 TSMC는 1992년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대만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6.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지난 2021년 57년 만의 가뭄으로 물 부족을 겪자 대만 정부는 TSMC와 ASE에 물을 대기 위해 재생수 공장을 따로 지었다. 대만전력공사는 TSMC 2nm 공장이 들어서는 신주과학단지에 초고압 변전소를 별도로 짓고 있다.

대만 반도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만은 2021년 5월부터 ‘반도체 대학원’ 인가를 내주고 학교당 100~150명 상당의 석·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연구개발(R&D) 투자 및 설비 투자에 대해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대만형 칩스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 법을 통해 TSMC가 감면받는 세금은 100억대만달러(4400억원)에 달한다.

원호연 기자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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