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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꿩과 함께 노는 치유농장

최근 과수밭을 둘러보던 중 갑작스레 ‘그’와 맞닥뜨렸다. 불과 1m 남짓한 거리라 순간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필자도 살짝 놀랐지만 내심 반가웠다. 강원 홍천의 산골이라고 해도 이렇게 가까이 ‘그’를 만나기란 흔치 않다. 다름 아닌 꿩이다.

어라? 그런데 필자를 보고서도 배를 땅에 댄 채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꿩은 옛날부터 인기 사냥감으로 취급됐기에 불쑥 사람이 나타나면 일단 도망치는 게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예전의 비슷한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발밑을 내려다보곤 깜짝 놀랐다. 발밑 바로 옆에서 암꿩이 땅에 배를 댄 채 숨죽이고 있었던 것. 하마터면 모르고 밟을 뻔했다. 그러나 필자의 놀란 움직임과 시선에도 암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눈과 표정에는 긴장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엔 독사에 물린 줄 착각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끼들을 부화시키기 위해 알을 품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은 돌보지 않는 꿩의 지극한 모성애라니!!

깊이 각인된 암꿩의 교훈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암꿩의 모성 본능을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에 그 모습을 담으려고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조금 더 다가갔다. 순간 암꿩이 가까운 다른 곳으로 점프하듯 피했다. 그런데 배를 깔고 있던 자리에 꿩알이 없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혹시나’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역시나’ 새끼 꿩 두 마리가 눈만 깜박거리며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그럼 그렇지. 어미 꿩의 돌발행동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자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작전(?)’이었던 게다. 감동적인 어미 꿩의 모성애 재확인. 필자는 남겨진 새끼 꿩들과 사진 찍고 동영상 촬영도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잠시 후 새끼 꿩들은 “안녕”하고 사라졌다.

예전에도 필자는 12마리나 되는 새끼 꿩 무리와 한바탕 신나게 논 적이 있다. 손바닥 위에 새끼 꿩들을 올려놓고 사진 찍고 촬영해도 마치 수줍은 모델처럼 가만히 있었다. 자기를 해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알아챈 것. 진심은 다 통하는 법이다.

사실 암꿩이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도 도망가지 않은 것은 모성애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조우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자신과 알을 탐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말이다. 물론 그 믿음은 둘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꿩은 살던 곳을 떠나지 않는 텃새인지라 필자와 새끼 때는 물론이고 이후 어른 꿩이 돼서도 자주 만났다. 그 과정에서 필자 가족에 대한 믿음이 하나 둘 쌓였을 것이다. ‘꿩 먹고 알 먹고’ 싶다거나 ‘닭장에 가둬 키운 다음 보신하겠다’는 탐심은 없다는 것을.... 세상사의 믿음관계 또한 탐심이 없어야 한다.

풍수에서는 꿩이 알을 품고 노니는 곳이 명당이고, 이는 곧 치유의 터다. 때론 파종한 씨앗을 죄다 먹어치우는 농사훼방꾼이기도 하지만 꿩 가족은 2010년 귀농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변치 않는 ‘자연의 친구’로 필자 가족과 함께할 것이다. 꿩(雉 꿩치)이 있으니(有 있을유) ‘치유’농장이요, 꿩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치유(治癒)’를 얻으니 진정한 치유농장이 아니겠는가.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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