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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칩 매국노’ 아니냐” 삼성 공장, 중국에 ‘복제’ 시도…K-반도체 발칵 [김민지의 칩만사!]
중국 시안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어떻게 부사장씩이나 오른 임원이…이거야말로 진짜 ‘현대판’ 매국노다.”(반도체 기술 유출로 기소된 A씨 기사에 달린 댓글)

반도체 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몰래 빼내 중국에 ‘복사판’ 공장을 지으려던 국내 반도체 업계의 권위자의 기소 소식 때문입니다. 이번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의 예상 피해금액은 최소 3000억원입니다. 반도체 기술 경쟁이 국가경제의 근간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만행에 누리꾼들도 공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꾸준히 반복되는 범죄에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막대한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 유출 범죄의 현주소, 오늘 칩만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반도체 수율의 달인’이 도대체 왜…

12일 수원지검은 삼성전자 전 상무·SK하이닉스 전 부사장 출신인 A(65)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공범 6명도 불구속 기소 됐는데, 이 중 한명은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감리회사인 B사 직원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직원이 3D 낸드플래시를 검사하는 모습.[삼성전자 제공]

A씨는 삼성전자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와 공정 배치도, 설계도면 등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 BED는 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공간에 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이고, 공정배치도는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8대 공정의 배치, 면적 등 정보가 기재된 도면입니다. 모두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합니다.

A씨는 이 정보를 기반으로 중국에 삼성전자 공장의 복사판과 같은 또 다른 공장을 건설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심지어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에 있는 메모리 반도체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A씨가 삼성전자에 18년 근무하고, SK하이닉스에서 부사장까지 역임했던, 국내 반도체 공정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업계에서 그는 ‘반도체 수율의 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은퇴 후 중국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설립한 뒤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핵심 반도체 인력 200명도 고액 연봉을 주고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철저한 보안에도…반복되는 기술 유출 범죄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반도체 업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삼성전자의 피해 예상 금액은 최소 3000억원, 많게는 수조원까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번에 유출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인 점, 30여년에 걸쳐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진 점 등을 고려한 수치입니다.

문제는 기술 유출 범죄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삼성전자 전 부장 C(44)씨가 최첨단 3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 공정 관련 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는 인텔로 이직하기 위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에는 DS(반도체)부문 소속 직원이 핵심 기술이 포함된 중요 자료 수십 건을 외부 개인 메일로 발송하고, 보관하다가 적발돼 해고 처리 됐습니다. 현재 국가 기관에서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국내 협력 업체로 이직을 준비하던 다른 직원도 중요 기술 자료에 대한 사진 수천장을 보관하다 적발돼 해고 처리된 적이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사내 보안시스템과 제품보안 사고 예방을 위해 매년 정기 감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가핵심기술 보안관리지침을 제정하고, 국가핵심기술별 임원급의 관리책임자도 지정하고 있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보안과 정보보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임원급에서 자행되는 기술 유출 범죄를 모두 막기란 쉽지 않습니다. 업계에서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함께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 18년이나 몸 담근 고위직 출신 전문가가 이런 범행을 시도하려 했다는 점에 정말 충격을 금치 못한다”며 “특히, 최근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핵심 산업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최대 33년 형인데…글로벌 기술경쟁 속 ‘솜방망이’ 처벌

실제로 한국의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솜방망이’에 불과합니다.

대검찰청 ‘기술 유출범죄 양형기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65명이었습니다.

이 중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이 292명으로 80%에 달합니다. 실형을 산 사람은 단 73명, 20% 뿐입니다.

실제로 앞서 인텔로 이직하기 위해 최첨단 3나노 공정 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던 C씨 역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초범이고 실제 피해가 없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반면 대만, 미국 등은 처벌이 무겁습니다.

[전경련 제공]

대만은 지난해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군사·정치영역이 아닌 경제·산업분야 기술유출도 간첩행위에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반도체 기술을 포함한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과 대만달러 500만위안 이상 1억위안(약 4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미국은 최대 33년의 징역형도 가능합니다. 연방 양형기준을 통해 피해액에 따라 범죄 등급을 조정하고 형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기술유출은 기본적으로 6등급의 범죄에 해당해 18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 가능합니다. 이 경우 188개월(15년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33년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기술유출 범죄는 범행동기, 피해 규모 등이 일반 빈곤형 절도죄와 다르기 때문에 초범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는 등 현행 감경요소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청, 특허청, 산업통상자원부 등 기술안보 관련 부처들도 지난 4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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