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두 번 상속했다가는 기업이 나라 것 되겠다”
약 6조원에 달하는 상속세 폭탄을 떠안았던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이 결국 현금 대신 회사 주식 일부를 국가에 넘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상속세율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세율을 두고 일각에서는 ‘국가가 상속 받냐’, ‘두 번 상속했다가는 기업이 나라 것이 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유족으로부터 넥슨 지주회사(NXC)의 지분 29.3%를 넘겨 받은 국가는 단숨에 2대 주주 자리를 꿰찼다.
앞서 김 창업자가 남긴 자산은 NXC 지분과 계열사 지분을 포함해 약 10조원으로 평가됐다. 김 창업자의 부인 유정현 이사와 두 딸은 지난해 8월 31일 6조원 가량의 상속세를 신고하고 첫 납부를 마친 바 있다.
유족에게 매겨진 상속세율은 60%다. 기본 상속세율 50%에 최대주주(보유지분 50% 이상) 할증이 붙은 수치다. 재계에서는 유족이 남은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현금 대신 주식으로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상속세법은 국공채·상장 주식·국내 소재 부동산으로도 상속세 납부가 어려울 경우 비상장 주식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서 태광실업 창업주인 고(故) 박연차 회장의 재산을 물려받은 일가가 6000억원 이상의 상속세 중 절반인 3000억원 가량을 비상장 주식으로 납부하기로 한 바 있다.
예상대로 김 창업자의 유족도 주식 납부를 택했다. 넥슨 지주회사 NXC가 31일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김 창업자의 두 딸이 보유하고 있던 NXC 지분 중 29.3%가 국가로 넘어갔다. 그 결과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 2일자로 NXC 주식 29.3%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배우자 유정현 이사의 NXC 지분은 34%로 종전과 동일하지만 두 딸의 지분 감소로 유족이 보유한 전체 NXC 지분은 98.64%에서 69.34%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최대주주로서 회사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동시에 회사 매각설도 사그라들었다. 한때 김 창업자 유족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지분을 외부에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매각설에 무게가 실렸지만 정부에 주식을 넘기면서 일단락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김 창업자 일가의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계기로 기업의 상속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기업이 매각설에 흔들리는 것도 모자라 국가가 글로벌 기업의 주요 주주 자리를 꿰차는 것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이다.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60%에 이른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받는 사람이 실제로 받는 이익에 비해 과도한 세율을 적용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며 상속세 개편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상속·증여세제 개편을 위해 해외 조사와 연구용역 등 사전 조사작업을 벌였지만 최근 기류가 바뀌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조속한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에 전달한 ‘원활한 기업승계 지원을 위한 상속세제 개선 의견’에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로 인하 ▷과표구간을 현 5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 규정 폐지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