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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지 사기, 왜 그들은 당했는가 [박세환의 빡센경제]

“우리는 (버나드) 메이도프를 신으로 여겼고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겼다.”(노벨평화상 수상 작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엘리 위젤)

“아주 종교야. 너 잘하고 있어. 왜냐하면 내 돈을 가져간 저 XX(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가 대단한 거야. 종교가 이렇게 탄생하는 거예요.”(가수 임창정 씨)

2008년 12월 11일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Bernard Madoff)가 수십년간 저지른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월가의 거물’ 메이도프는 197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38년간 금융당국의 수수방관 속에 무려 650억달러(약 86조3000억원) 규모의 사기를 쳤다. 신규 투자자들의 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환매대금과 수익금을 챙겨줬다. 즉, 폰지 사기로 수십조원의 사기를 친 것이다. 메이도프는 그 죗값으로 150년형을 받았고 2021년 4월 옥사했다. 그러나 137개국 피해자 3만8000여명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메이도프 사망 2년이 지난 2023년 4월 한국 주식시장에서도 SG증권발 매도물량이 쏟아지며 8개 종목의 주가가 무더기로 폭락하면서 초대형 주가 조작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드러났다. 가치투자를 빙자한 폰지 사기. 작전세력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에게 돈을 댄 투자자만 1000여명, 투자 피해금액만 수천억원에서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열렬한 신봉자 만드는 폰지 사기

폰지 사기(Ponzi scheme)란, 실제로는 이윤을 거의 창출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수익을 기대하는 신규 투자자를 모은 뒤 그들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수익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행되는, 다단계 금융 사기수법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아랫돌 빼서 윗돌로 올리고 어느 정도 목돈이 모이면 튄다’는 것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간략화된 예시를 들어보자. 사기꾼 A가 월수익 10%를 보장한다며 자신에게 투자할 것을 종용하고 다닌다. 그걸 보고 투자자 B는 여기에 100만원을 투자한다. 그러면 A는 다음달에 정말로 B에게 10만원을 배당으로 돌려준다. 중요한 건 이 배당금은 수익이 나서 준 게 아니라 그냥 원금에서 떼어서 돌려주는 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아무 사업을 벌이지 않으므로 수익은 당연히 ‘0’이며, ‘배당금은 단지 추가적인 피해자를 꾀어내기 위한 미끼일 뿐’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B는 이 수익금을 자랑하게 되고, 그럼 거기에 혹한 C와 D가 또 100만원씩을 투자한다. 여기까지 하면 A는 누적 투자금 290만원을 받았다. 사기꾼인 A가 이 시점에서 그대로 잠적해버리면 해당 금액은 A의 수익이 되며 B, C, D 입장에서는 피해금액이 되는 것이 바로 폰지 사기다. 굳이 공식으로 표현하면 ‘투자자들의 투자금 총액-투자자들에게 준 배당금=투자자들에게 주지 않은 투자 원금’이 된다. 여기서 투자자들에게 주지 않은 투자 원금이 먹고 튈 수 있는 돈이 된다.

만약에 사기가 성공적이어서 A가 한 번 정도는 더 속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A는 여기서 인내심을 발휘해서 B, C와 D에게도 한 달치의 배당금을 더 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더욱 홍보가 돼서 E, F, G, H가 100만원씩 투자금을 들고 찾아온다. 그렇게 되면 A는 660만원을 먹고 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성공적인 폰지 사기일수록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초기의 소수 투자자들은 투자금 이상의 수익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사기도 남들보다 빨리 당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런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의 열렬한 신봉자가 돼서 많은 사람을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된다. 물론 이 프로젝트의 본질이 사기라는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폰지 사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승승장구한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더라도 투자자가 더는 기하급수적으로 모이지 않는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존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배당률 때문에 누적된 투자금의 양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투자자가 많아졌으므로 의심을 살 위협도 급증한다. 따라서 이때쯤이면 사기꾼은 슬슬 남은 돈을 가지고 도망쳐 버리게 된다.

■폰지 사기에 왜 빠지는가

사람들은 왜 폰지 사기에 빠지는 걸까? 안정된 고수익과 높은 배당금을 더 많이 준다는 숫자적 착각 때문에 빠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심리학에는 ‘동조 효과(conformity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동조심리 현상을 말한다.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고 그 관계 속에 일원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다.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관점 속 사회적 요소들에 관한 연구(Study of some social factors in perception)’에서 동조에 관한 최초의 실험을 했다. 실험은 자동운동(autokinetic)에 관한 실험이었다.

빛이 없는 어두운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 작은 불빛의 점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으면 이 불빛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가 본 불빛의 움직임 방향과 크기에 대해서 다르게 기술했다. 하지만 개별이 아닌 집단에 속할 때는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타인의 관점을 수용해서 집단에 맞는 또 다른 불빛의 움직임에 맞추려는 결과를 보였다. 이처럼 사람은 나의 생각과 시각보다는 집단의 상황과 판단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단계 사기에 빠지는 두 번째 이유는 ‘책임감의 분산’ 현상이다.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라고도 한다.

이는 1913년에 최초로 막스 링겔만(Max Ringelmann)이 ‘말들의 능력에 대한 연구’에서 처음 발견했다. 말 한 마리의 힘이 100이라면 두 마리의 힘은 200이 돼야 하는데 수레를 두 마리가 끌 때의 힘이 200이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밧줄을 혼자의 힘으로 당길 때와 여럿이 같이할 때의 힘이 다른 것을 실험을 통해 밝힌 것이다.

함께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힘은 작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타인에게 자신이 가지는 책임감을 분산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모든 짐을 지는 것보다 타인과 나눠서 지고 싶은 심리인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다단계도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계급이 존재한다. 이전 두 가지 이유와 함께 계급은 곧 ‘권위’와 같은 심리를 만들어낸다. 1974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는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권력’ 앞에서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려는 기본적인 심리가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은 교사 역할을 하게 하고 학습자는 외운 단어가 틀릴 때마다 실제로는 충격이 없지만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게 했다.

많은 사람이 이 실험에서 교사 역할을 맡은 참가자가 실험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실험에서 교사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450V인 최고치 전기 충격을 줄 때까지도 계속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이 다 끝났을 때 참가자들이 전기 충격을 계속해서 준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핵심은 고수익에 대한 믿음…유명인을 끌어들이는 이유

메이도프 금융 사기와 라덕연 주가 조작 사태, 두 사건은 묘하게 닮았다. 화려한 인맥을 토대로 한 맹목적 믿음, 유명인과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장기간 비상식적 수익률을 보장했다는 점 등이다.

1938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메이도프는 1990년부터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세 차례 지낸 ‘월가의 거물’이었다. 최고급 골프클럽에서 자산가들과 골프를 즐기며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각종 자선활동을 통해 본인의 평판을 관리했다. 노벨상 수상자 엘리 위젤 작가를 비롯해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감독,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의 제프리 캐천버그 대표,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 케빈 베이컨 등 연예계와 문화계 거물이 메이도프 금융 사기 피해자에 포함됐다.

라덕연 사태에서도 연예인, 재계 회장 등과의 친분을 내세워 투자자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가수 임창정 씨와 박혜경 씨,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 대표는 연예인이 소유한 빌딩에서 골프아카데미를 운영하던 프로골퍼 출신 안모 씨를 통해 연예인에게 은밀한 ‘투자 영업’을 했고 피부관리숍, 고급 주점 등을 차려 다단계 점조직 형태로 인맥을 넓혀 갔다. 투자자들은 라 대표에게 개인정보와 휴대전화를 모두 일임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전문가는 폰지 사기 일당이 유명인을 통해 사기에 필요한 신뢰를 확보하고 유명인들의 초기 수익을 통해 투자자 확대에 나선다고 지적한다. 권민정 법무법인 테헤란 변호사는 “(폰지 사기 일당이) 유명인을 내세우는 이유는 신뢰감을 얻기 위해서”라며 “자신의 사업 근거가 빈약하니깐 다른 인지도 있는 사람을 내세워서 ‘유명한 사람도 투자하니깐 수익이 제대로 나는 사업이겠지’라는 마인드를 유발한다”고 했다. 즉, 내가 아닌 유명인들과 수많은 사람이 함께 투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비합리적인 판단’ 속으로 ‘동조 효과’와 ‘링겔만 효과’ ‘권위에 대한 복종’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폰지 사기는 1920년대 미국의 찰스 폰지(Charles Ponzi, 1882~1949)라는 사람이 벌인 사기수법을 따 지은 이름이다. 폰지가 친 사기는 간단했다. 국제우편 쿠폰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고액의 수익을 보장하며 투자자를 모집했지만 실제로는 사업소득이 아니라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면서 규모를 키워 단기간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쉽게 말해 ‘돌려막기’ 투자를 한 것이다. 결국 이상한 낌새를 느낀 투자자들이 원금 반환을 요구하자 이를 다 지급할 수 없게 되면서 폰지의 범행수법이 발각됐다. 폰지 사기는 탐욕에서 시작된다. 결국 돈 욕심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고수익’에 매달 배당금까지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 끊임없이 피해자는 발생하는 것이다.

폰지가 몇 번의 옥살이를 하고 1934년 이탈리아로 추방당할 때도 부두에는 추종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놀랄 만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투자 대상’을 앞세워 사람들을 현혹하는 폰지 사기극은 메이도프와 라덕연 등 오늘날에도 새로운 얼굴로 출몰한다.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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