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물가’보다 ‘경기침체’가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25일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내렸다. 지난해 2월 2.5%로 전망한 이후 다섯 번째 하향조정이다.
OECD(1.6%), IMF(1.5%) 등 주요 국제기구의 전망보다도 비관적이다. 한은은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중국 경제 회복세가 예상보다 나쁠 경우 성장률이 1.1%로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은이 경기 회복에 힘을 실어주며 기준금리를 3회 연속 동결한 이유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창용 한은 총재의 작심 발언이다. 이 총재는 이날 “지금의 고(高)인플레이션 시대가 지나면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 구조로 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한국 경제가 이미 장기 저성장구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처방을 묻는 기자들에게 “구조개혁을 미룬 채 재정·통화정책으로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직격했다.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 문제를 노동·연금·교육 등 구조개혁으로 풀지 않고 돈 풀기 등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를 두고 쓴소리를 한 것이다.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연 이후 6년째 3만달러 초반을 헤매는 한국은 닥쳐 올 장기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른바 ‘3만달러의 덫’을 피하기 어렵다. 이탈리아가 반면교사다. 2005년에 3만달러를 돌파했으나 지난해 3만5000달러 선에 머물며 18년째 답보 상태다. 기본소득을 앞세운 좌파 정부를 포함해 포퓰리즘 정당들이 돌아가며 집권하는 혼탁한 정치구도에 휘말려 왔다. 돈 풀기 정책이 부채를 키우고 과도한 부채는 성장을 낮추면서 저성장이 다시 부채를 늘리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저출산·고령화도 유럽 최악 수준으로, 65세 이상 노인비율 27%는 세계 최고령국 일본에 근접하고 합계출산율 1.2는 유럽에서 바닥이다. 우수 인재의 이탈도 심각하다.
3만달러 덫을 탈피하려면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한데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이탈리아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이 총재는 “우리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이해당사자 간 타협이 너무 어려워 진척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사회적 타협을 통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거야(巨野) 입법권 폭주-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정치권이 꼽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정치권이 본령인 갈등 중재의 역할은커녕 갈등 증폭과 국론 분열,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현실을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