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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재정준칙은 선택이 아닌 필수

‘2022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는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해 1067조7000억원(국가채무비율 49.6%)이고,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17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말 국가채무 660조2000억원(국가채무비율 36%)과 비교하면 5년간 증가폭이 6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재정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향후 5년간 OECD 37개국 중 23개국이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 나랏돈을 아끼는 방향으로 재정정책을 돌리고 있지만 한국은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나랏빚을 늘리는 ‘재정 역주행’을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재정 동향 5월호’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가 올해 1분기에만 54조원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정부가 전망한 올해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58조2000억원)의 92.8%에 육박해 재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대규모 적자는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이 전년 동기보다 24조원 감소한 데에 기인한다. 경기 둔화에 따른 부동산시장 침체, 기업 실적 부진, 내수경기 부진 등으로 ‘3대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수입이 일제히 줄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재정수지 적자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잠재 성장률이 하락하고 연금·의료비 부담이 커져 국가부채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한국 경제가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이란 점이다. 최근 들어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조정하고 있다. 또한 무역과 재정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적자의 그늘도 짙어간다. 4월 수출이 반도체 불황과 대중 수출 부진 여파로 7개월 연속 감소하며 무역수지 적자가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쌍둥이 적자는 소규모 개방경제이자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악재다. 대외신인도 하락, 자본 유출, 금융·외환 불안 등 온갖 부작용을 야기하며 국가적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경제 상황이 심각한데도 정책은 재정건전성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거대 야당의 ‘퍼주기’ 입법이 쏟아지고 있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성격의 재정지출 확대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런 병폐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나랏빚 폭증을 막아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재정준칙의 도입이 시급하다. IMF에 따르면 전 세계 105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있지만 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노동계는 반대 명분으로 복지지출의 제약을 내세우지만 복지지출은 의무 지출이 대부분이어서 준칙 도입으로 제약될 가능성은 작고,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준칙을 운용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복지지출을 유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9월 ‘관리재정수지 연간 적자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5월 국회 처리도 무산됐다. 국가부채가 적정 수준을 넘으면 국가신용도 하락과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지고, 과도하면 국가부도로 이어진다. 중남미국가에서 좌파정권의 브레이크 없는 무상 복지와 포퓰리즘으로 인한 재정파탄이 국가경제를 어떻게 몰락시키고 ‘국민의 난민화’로 이끄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장에서는 재정준칙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해 복합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현 상황에서 재정준칙 도입은 선택이 아닌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정책과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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