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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사 '준법투쟁' 나서자 일손 부족...PA 간호사 역할 논란 재점화
의사·간호사 경계서 일하는 간호사 1만명…위법 여부 논란
준법투쟁에 다시 수면 위로…복지부 "협의체 구성해 논의"

4일 서울시 중구 대한간호협회 간호교육 강의실에서 열린 간호사 직무교육에서 간호사들이 가운과 N95마스크 착의 교육을 하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반발한 간호사들이 '업무 외 의료행의'를 하지 않는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PA(Physical Assistant·진료보조) 간호사'에 대한 역할 논쟁이 재점화하고 있다.

23일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PA 간호사는 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PA 간호사는 수술장 보조 및 검사 시술 보조, 검체 의뢰, 응급상황 시 보조 등이 주된 역할로, 법의 경계에서 의사의 의료행위를 일부 대신해왔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의 임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진료의 보조'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의사 수가 부족한 병원에서 사실상 의사가 해야 할 일을 일부 대신해 온 것이다.

수술실 보조나 수술 후 처치(드레싱 등) 등 전공의가 해야 하는 대신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담당 교수와 함께 회진을 돌기도 한다. 이처럼 의료법 저촉 여지가 적지 않지만 PA 간호사는 필수의료 분야 기피 등으로 인한 의사 수 부족에 2010년 생겨난 이후 빠른 속도로 수가 늘고 있다.

주당 최대 수련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2016년 12월 시행되면서 더 두드러진 인력 공백을 각 병원이 전공의가 아닌 PA 간호사들로 메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평균적으로 국립대, 사립대 병원에서 각각 60~100명에 달하는 PA 간호사를 두고 있다"며 "5~6년 차 간호사들이 별도의 교육 없이 간호사 업무가 숙련됐다는 이유로 PA 간호사 업무를 떠맡게 된다"고 말했다.

국제 간호사의 날인 12일 오후 간호사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2023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축하 한마당' 행사에서 밝은 표정으로 팻말을 흔들고 있다. [연합]

개선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PA 간호사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작년 12월 삼성서울병원이 계약직 PA 간호사 채용 공고를 내면서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자 법 위반이라며 삼성서울병원 측을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간호법 제정이 사실상 무산된 데 반발한 간호사들이 그동안 암묵적으로 해왔던 진료보조 업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논란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간호협회는 '불법의료행위 리스트'까지 만들어 의료기관에 배포하고 신고도 받고 있다.

리스트에는 대리처방, 대리기록, 대리수술, 수술 수가 입력, 수술부위 봉합, 수술보조(1st, 2nd assist), 채혈, 조직 채취, 천자, L-tube 및 T-tube 교환, 기관 삽관, 봉합, 관절강내주사,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항암제 조제 등이 포함됐다.

간호사들의 이런 '준법투쟁'에 대해서는 전공의(레지던트)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도 '환영'의 뜻을 밝히고 나섰다. 이참에 서로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전공의협의회는 "간호협회의 준법투쟁을 대환영한다"며 "병원에서 전공의 주 80시간제 이후 충분히 대체 의사인력을 채용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가 현재 만연한 대리수술과 대리처방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은 전공의법이 시행된 이후 주당 130시간 이상 일하던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크게 줄긴 했지만, 병원들이 전담의나 촉탁의 등 대체 의사 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PA 간호사로 채우면서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 혼재가 더욱 심화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PA 간호사가 수술 보조 업무를 대신하다 보니 수술 집도 의사 곁에서 전공의들이 보조하며 수련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우려 섞인 불만도 나온다.

강민구 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전공의는 4년간 병원에서 일을 할 뿐이지만, PA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인력이니까 간단한 수술 보조가 필요할 때 (병원에서) 전공의보다 PA 간호사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탓에 전공의들의 수련 기회가 줄어든다는 불만이 나온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낸 보도자료에서 간호협회가 리스트에 적시한 의료행위를 불법으로 단정할 수 없으며 업무 범위는 개별적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임강섭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간호협회에서 제작한 불법의료행위 리스트는 다른 직역과의 갈등에서 나온 것"이라며 "의료행위라는 것이 누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없고를 배타적으로 따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례를 보면 환자에게 얼마만큼 위해를 끼쳤는지와 함께 간호사의 숙련도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서 판단하지, 의료행위의 종류에 따라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의료행위의 결과에 따라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경우 PA 간호사를 둘러싼 혼란 상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간호사가 대리수술을 하다가 환자가 죽으면 불법이고, 환자가 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라면서 현재 의료현장을 "게임의 규칙이 없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오프사이드를 해도 되는지, 뒤에서 잡아당겨도 되는지 모르니까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싸우는 것"이라며 "PA 간호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단체는 반대하지만 PA 간호사 제도를 양성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등 해외처럼 PA 간호사가 별도의 교육을 받고 자격시험을 거쳐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국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의사 업무의 15%를 PA 간호사가 대체할 수 있다"며 "PA 간호사를 6만 명정도까지 늘려서 의사를 보조하도록 하면, 의료서비스의 효율과 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다음달에 전문가, 현장 종사자, 관련 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PA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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