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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천원으로 사는 삶엔 50만원도 절실” 6개월간 대부업·일수업체 돌았다[소액생계비리포트]
中-사각지대를 찾아서①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헤럴드DB]

열심히 산다고 누구나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안락한 잠자리, 균형 잡힌 식사, 계절에 맞는 옷차림이 어려운 이들도 있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잘 짜여졌는가가 선진국의 요건이라면, 한국은 몇 점일까.

금융위원회는 3월 27일 소액생계비 대출을 출시했다. 신용점수를 따지지 않고 당일 최대 100만원을 대출해주는 이 상품은 한 달 만에 2만5000여명이 몰렸다. 이들의 평균 대출금액은 61만원. 병원비를 내려고, 전기세가 밀려서 등 적게는 몇만원 많게는 100만원이 없어서 빌리는 이가 이렇게나 많다.

헤럴드경제 특별취재팀은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은 이들을 직접 만났다. ‘씁쓸한 흥행’을 가져온 정책을 만든 까닭도 듣고, 생계비를 빌리려온 이들이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상담사에게도 물었다. 돈이 없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각자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진 비극은 누구에게든 올 수 있다.

[특별취재팀=서정은·성연진·홍승희·김광우 기자] “밥 한 끼가 1~2만원인데, 몇 천원으로 사는 삶이 있더라. 1차 대출 한도 50만원이 적어보여도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

지난 3월 27일 출시된 소액생계비대출은 최대 100만원까지 당일 빌려준다. 연소득 3500만원 이하에 신용점수 하위 20%가 지원 대상이다. 1차 대출 한도는 50만원이지만, 전기세나 수도세 등 생계비가 쓰일 용도를 추가로 입증하면 100만원 한도 내에서 더 대출이 가능하다.

이 정책으로 한 달간 2만3000여명이 평균 61만원의 대출을 받아 140억원이상 소진됐다. 정책 시행 전 대출 한도액이 너무 적고 금리가 연 15.9%로 높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못받는 파산 이력이 있는 서민이나, 월세 30만원이 없어서 찜질방을 전전하는 가족 혹은 몇 만원의 공과금을 밀린 사람들이 신청하면서 사이트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당국도 예상치 못했던 ‘가슴 아픈 흥행’이다. 금융위는 내년 소액생계비대출 사업 예산 1500억원의 추가 편성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내후년까지 정책이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소액생계비 대출은 금융위 금융소비자국 서민금융과 과장과 사무관의 아이디어로 나왔다. 시작은 ‘휴대폰깡’으로 번진 불법 사금융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SNS를 중심으로 ‘내구제 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 피해가 번지고 있었는데, 금융위가 피해금액을 살펴보니 보통 50만원이 되지 않았다. 온라인 대부업체 사이트의 대출금액 최빈값(가장 많은 금액)도 40만원이었다.

1차 대출한도 50만원은 불법 사금융에 언제든 노출될 수 있는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급전인 셈이다. 당초 한도가 적고 금리가 높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금융위가 6개월 간 서민금융 최전선에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세심히 짠 정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수십만원이 없는 이들의 금융생활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년 9월부터 6개월 간 민간 대부업체는 물론 개인 일수 받는 곳까지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대면 대출을 고수한 것도 반년 간 고민한 결과다. 다급히 생계비 대출을 받은 이들 가운덴 “전화를 100통 돌리고서야 겨우 상담 예약을 잡았다”면서 ‘대면 대출’의 불편함을 호소한 이들도 있다. 금융위는 이에 대해 “귀찮아도 면담을 하러 올 정도로 절박하고 의지가 있는 분들을 돕기 위해 ‘의도적 불편함’을 만든 것”이라며 “이들을 직접 대면해 직업이나 복지 제도를 안내하려고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한 달 간 대출 과정에서 채무조정 9181건, 복지연계 4940건, 취업지원 1768건 등 총 2만5420건의 복합 상담이 함께 진행됐다. 특히 상담에서는 506건의 불법 사금융 신고와 5467건의 ‘채무자 대리인’ 상담이 함께 이뤄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27일 소액생계비 대출 상담 창구를 찾아 격려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유재훈 금융소비자 국장은 정책 관련 브리핑에서 소액생계비 대출이 ‘실험적 정책’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없을 정도로 최초로 시행되는 정책이다보니, 당국의 고민도 컸다.

정책 시행 전인 3월 9일 유 국장은 직접 서민금융진흥원을 찾아 상담사 교육도 진행했다. 유 국장은 이 자리에서 “1차 대출한도 50만원을 반드시 고집하지 말고, 필요한 용도가 있으면 한번에 100만원 대출을 진행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것도 아닌 생계비 대출인 만큼, 기계적 적용을 피하라는 당부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정책 시행 첫 날 직접 센터를 찾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출 상담은 이전에도 상담사들이 했던 분야지만, 복합 상담은 깊이 있게 해야 해서 초반에 매일 같이 상담 내용을 보완했다”면서 “시스템 보완이 아니라, 상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이런 상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공유했다”고 전했다.

당초 서민을 상대로 고금리라 지적받던 연 15.9%의 금리는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신용등급 최하위에 제공하는 햇살론15 상품의 금리를 기준 삼았다. 이보다 더 낮추면,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대출 금리보다 낮아져서 오히려 시장 질서를 흔들 수 있다.

이 정책은 최저신용층의 불법사금융 피해를 막고, 이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50만원 대출 후 이자를 성실상환해야 6개월 후 50만원 대출을 더 받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금융위도 이들이 갚지 못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다고 생계비대출에 대한 추심을 진행할 순 없다. 유재훈 국장은 앞서 “갚지 못할 분들은 복지로 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lucky@heraldcorp.com
h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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