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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초유의 참사, 초유의 해법

몇 년 전 미국의 기념일이라는 ‘핼러윈’은 서울 이태원에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태원은 주한미군이 주둔한 용산미군기지와 가까워 서울에서 미국 문화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던 곳이다. 그래서 당시 실제로 이태원의 핼러윈은 어떨까 하고 직접 찾았던 기억이 난다.

거리에 어둠이 내리자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을 발했다. 어느 새 핼러윈 분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을 온갖 희한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자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참 즐거웠던 이색 경험이다. 이국적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한 이태원거리에서 생소한 외국음식과 디저트, 음료, 음악을 접하는 경험 또한 나쁘지 않았다.

돌이켜보건대 이태원 핼러윈 행사의 백미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핼러윈 분장을 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와, 저기 저 사람 좀 봐” “준비하느라 힘들었겠다. 노력이 가상하다”등의 대화를 하며 그동안 가졌던 편견을 털어내고 타인을 보다 따뜻하고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쳇바퀴 돌 듯 따분한 일상에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따지고 보면 크리스마스도 서구의 기념일인데 우리가 잘 즐기고 있지 않은가. 핼러윈 또한 크리스마스처럼 우리가 잘 받아들여 새로운 우리 문화의 한 갈래로 발전시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로부터 몇 년 뒤 경기도의 한 타운하우스단지에서 열린 핼러윈 행사는 훌륭해 보였다. 단지 주민이 핼러윈 행사에 참여할 세대를 미리 파악해 문 앞에 표시해놓고, 아이들은 참여 세대 지도를 따라 사탕을 얻으러 다닌다. 참여 세대는 참여해서 좋고, 불참 세대는 서로 민폐를 끼치지 않아 좋았다. 이런 식으로 한국적 핼러윈이 자리 잡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해보았다.

그런데 얼마 후 뜻하지 않게 이태원에서 대참사가 일어났다. 수십명이 사망했다는 속보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허탈할 뿐이었다. 문득 여차하면 나도 희생자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참사 2주 전 가족과 문제의 그 장소에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10월 15~16일 열린 ‘2022 이태원 지구촌축제’를 보러 갔었다. 그날 이미 인파가 상상 외로 많았다. 이러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 아이들과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온 기억이 생생하다. 만약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무척 억울하고 슬펐을 것이다.

참사 후 6개월이 흘렀다. 여전히 유족들의 진상 규명 호소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법과 원칙’이 거칠게 충돌하고 있다. 유족들이 서울광장에 설치한 분향소에 대해 서울시는 행정대집행을 통한 강제 철거를 시사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시는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광장 72㎡ 부지를 유족들이 무단 점거했다며 변상금 2900여만원까지 부과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역대로 150여명이 서울 도심에서 참사를 입은 사건은 없었다. 전례 없는 참사를 기존의 원칙으로 풀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풀라고 정치인과 행정가가 있는 게 아닐까.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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