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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양하려면 230억 내놔야” 해도 너무한 학교 기부채납 [부동산360]
초중학교 증개축 요구 비용 230억 넘어
학교용지부담금 27억원의 9배 수준
사업지 땅값보다 비싼 학교 기부채납
“학교 기부채납 합리적 기준 마련해야”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주택업체들이 교육청의 과도한 학교 기부채납 조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청으로부터 사업지 전체 땅값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을 인근 학교 증개축 기부채납으로 내라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인 곳까지 나타났다. 사업자는 이 요건을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인허가 지연으로 분양 일정이 무한정 연기될 수밖에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28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신안건설산업(이하 신안)은 경기 이천시 백사지구 ‘이천 신안실크밸리’ 880가구를 지으면서 사업지와 2㎞ 떨어진 기존 초·중학교의 증·개축 기부채납 비용으로 23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현 사업지(4만2900㎡)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땅을 살 수 있는 금액으로 법적 ‘학교용지부담금’(27억원)의 9배 수준이다.

업계에선 학교 기부채납 금액이 ‘학교용지부담금’을 넘어서는 경우는 흔하지만 9배 수준으로 과도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기존 학교를 증·개축할 경우 교실 증축 외에 대규모 부대시설을 요구해 기부채납 비용이 학교용지부담금을 넘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은 처음”이라며 “주택업계에 또 다른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우려하는 사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연합]

주택사업자는 ‘학교용지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 등 관련법에 따라 1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교육 기반시설 비용인 학교용지부담금(분양가의 0.8%)을 내야 한다. 인허가 과정에서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신설 학교 설립 기준(4000가구 이상)보다 작은 단지의 경우 학교용지부담금 대신 인근 학교 증·개축 기부채납을 인허가 요구조건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새 아파트를 지으면 늘어나는 학생들이 기존 학교에 다녀야 하는 만큼 기존 학교 시설을 확충하라는 취지다.

신안도 단지 규모가 신설 학교 설립 기준보다 작아 인근에 있는 초·중학교 증·개축 요구를 받았다. 문제는 기존 학교 시설 확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요구 조건을 모두 수용하다 보니 금액이 계속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신안 관계자는 “처음엔 기존 학교의 교실만 8개 새로 증축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학생 수가 늘어나는 만큼 급식실, 화장실 등도 확충해야 하고, 늘어나는 교원 수만큼 교사동도 증축하고 강당, 운동장 등도 새로 만들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금액이 당초 예상보다 수십억원 더 늘어나면서 230억원 이상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안은 기존 학교 증·개축 비용 외에도 단지가 지어지면 향후 추가로 부지를 매입해 통학로를 확대하고, 사업지와 기존학교 간 3.4㎞를 다니는 셔틀버스도 운영해야 하는 등 기부채납 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안의 백사지구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현장은 꽤 많다. 경북 경산 압량읍에 지어지는 ‘경산 아이파크’ 아파트 건설 현장이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 사업 시행사는 최근 경산교육청에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 조건이 과도하다며 재협의를 요구했다.

경산교육청도 이 단지(1722가구)가 새 학교를 지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닌 만큼 법적 학교용지부담금(63억원)을 내지 않는 대신 인근 초등학교 유치원 시설을 증축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이 비용이 학교용지부담금의 두 배 가까운 115억원이나 됐다. 시행사는 인허가를 받기 위해 마지못해 교육청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였지만, 고금리 상황과 건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기부채납 규모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주택업계는 현재와 같은 주먹구구식 학교 기부채납 요구는 공사 기간 중이나 준공 이후에도 계속 적정성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실제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했는데, 별도로 인근 학교 교실 리모델링을 요구하거나, 이미 학교용지 기부채납 협약을 마쳤는데 추가로 수천㎡ 규모의 땅을 더 요구하는 식으로 합리적 기준 없이 운영해 업체들과 분쟁을 겪는 현장이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과도한 기부채납은 분양가상승으로 이어지고, 추가비용 확보를 위한 기본공정 원가절감으로 부실시공이 발생할 우려도 커지므로 합리적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요구한다.

주건협 관계자는 “개발사업이 학교시설 확보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학교시설 기부채납 부담은 적정 범위에서 결정될 필요가 있다”며 “법적 기준인 학교용지부담금 산정 금액을 초과하는 학교시설 기부채납을 금지하고, 인허가 이후에도 기부채납 협약의 적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면 심의 및 조정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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