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속 내팽개쳐진 자라들, 촬영 후 죽었다 [지구, 뭐래?]
[영화 '헤어질 결심']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아이, 다 도망간다! 자루에 얼른 담아. 성질 더러우니까 손가락 조심하고”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해준(박해일 분)은 자라 58마리를 도난 당했다는 신고를 받는다. 달아나던 자라 절도범이 타고 있던 오토바이가 쓰러지면서 자라가 논두렁으로 쏟아졌다. 발로 걷어차며 모은 자라를 자루에 담다가 기어이 손가락을 깨물린 해준.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했던 자라는 정말 살아있는 동물이었을까? 촬영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갔을까? 영화에 동원됐던 자라 중 세 마리는 결국 죽었다.

‘헤어질 결심’ 속 내팽개쳐진 자라들, 촬영 후 죽었다 [지구, 뭐래?]
영화 '헤어질 결심' 속 길에 쏟아진 자라가 발로 채이는 장면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가 영화 제작사 ‘모호필름’에 자라 촬영에 관해 문의한 결과, 세 마리는 촬영 후 죽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제작사에 따르면 자라가 등장한 장면 중 일부는 모형으로 대체됐다. 손가락을 물어뜯기는 장면은 자라 모형에 컴퓨터그래픽(CG) 처리를 했고, 투명한 비닐 봉투에 담긴 자라도 모형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오토바이가 쓰러진 장면에서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건 실제 살아있는 자라들이었다.

이 자라들은 전남 보성의 한 자라 농장에서 대여 방식으로 섭외됐고, 영화 촬영 후 농장으로 돌아갔다. 자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제작사 측은 자라 농장 근처에서 촬영하며 자라의 동선을 최대한 짧게 했고, 농장주의 도움과 관리를 받았다고도 했다.

자라는 추위에도 약하지만, 스트레스에도 극히 민감한 동물로 알려졌다. 제작사 측은 “촬영 시 자라의 유실과 동사를 막기 위해 대기 장소를 확보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며 “자라의 특성을 확인하고 자라 농장주와 사전 미팅 후 필요 물품을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헤어질 결심’ 속 내팽개쳐진 자라들, 촬영 후 죽었다 [지구, 뭐래?]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가 자라 촬영 관련해 영화 '헤어질결심' 제작사 '모노필름' 측에 보낸 질의 [동물권행동 카라]

CG를 활용했고 촬영 장소와 환경에서 최대한 자라의 안전을 도모했다지만, 촬영 후 세 마리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카라는 자라의 죽음이 영화 촬영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카라 측은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자라를 발로 차고 이에 자라가 뒹굴뒹굴 구르는 장면이 나온다”며 “스트레스에 취약한 자라가 촬영현장에서 안전이 보장되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자라가 대여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자라나 물고기 등 소동물들은 촬영을 위해 쉽게 구매되고, 촬영 후 유기하거나 폐사, 처리 방법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 탓이다.

카라가 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대여 및 섭외한 동물들이 촬영 후 어떻게 되는지 물었을 때 ‘업체나 반려인에게 돌려줬다’고 답반 비율은 절반 뿐이었다. 나머지는 ‘입양 보냈다’(22%), ‘모른다’(8%), ‘폐사(사망)했다’(3%), ‘자연에 방사했다’(1%) 등 이었다.

‘헤어질 결심’ 속 내팽개쳐진 자라들, 촬영 후 죽었다 [지구, 뭐래?]
[영화 멍뭉이]

중요한 건 동물들이 영상 촬영 중에 다치거나 죽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 소품처럼 이용되는 동물 출연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좋다.

카라는 2020년 마련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라를 비롯한 파충류의 경우 ▷영화 촬영을 위해 동물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할 것 ▷특정 종에 대한 경험이 있는 훈련사가 고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물론 사람을 위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파충류는 살모넬라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촬영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따뜻한 물과 비누가 촬영장에 갖춰져 있어야 하며, 독이 있는 파충류를 다룰 때는 사전 안전 회의를 하고 예방 대책을 수립하라는 식이다.

‘헤어질 결심’ 속 내팽개쳐진 자라들, 촬영 후 죽었다 [지구, 뭐래?]
[유튜브 캡처]

또 음식이 되는 동물들의 권리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가령 산낙지를 먹는 장면이 국내에서는 문제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다르다.

카라의 권나미 활동가는 “동물이 식용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오락화나 희화화하는 건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려동물이나 포유류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동물들이 촬영에서 소품처럼 이용되는 데 계속 문제가 제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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