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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법 추진에도 ‘전세 포비아’ 확산
경매완료 피해자 구제 방안 없어
피해자 69.7%는 공공매입 원해
사회초년생·MZ “비싸도 월세로”

“집은 경매 넘어갔고, 전세보증금은 카드빚지고 갚아서 허덕이는데...다시는 전세 못 갈 것 같아요.” 인천 미추홀구 내 전세사기 피해자인 서모(34)씨의 집은 정부의 ‘전세사기 매물 경매 중단’ 발표 전 경매로 넘어갔다. 전세가 1억 6000만원이던 집은 1억이 안 되는 가격에 팔렸다. 서씨는 “특별법·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경매가 이미 진행돼 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현실적으로 보증금을 회복할 방법이 있나 싶다. 태어난 지 두 돌도 채 안 된 아기랑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지원 특별법(이하 특별법) 추진에도 불구, 피해자 구제 방안을 두고 각종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대책과 별개로 번화가를 중심으로 ‘전세 거부’ 현상도 커지고 있다.

24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대책위) 등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특별법에 보증금 채권의 공공매입, 경매 진행된 피해자 대책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증금 채권 매입이란 정부가 일단 세금을 투입해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매입하고, 이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뜻한다.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공공매입이 가장 간절하다. 대책위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선호 특별법 내용으로 보증금 채권 공공매입을 69.7%로 1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부정적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보증금을 온전히 정부가 보장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며 “(경매로 넘어간 매물의) 가치는 낮아졌다. 만약 경매가가 1억원 정도 낮게 나온다 하면 사라진 1억원 금액 손실을 누가 감당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집이 이미 경매로 넘어간 피해자들에 대한 해결방안도 남았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날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대상 대환 대출이 시작됐지만 이미 경매에 넘어간 피해자들의 경우 소급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당정이 나설만큼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전세 거부’ 분위기도 확산 중이다. 대학가나 번화가에서 희귀 매물로 경쟁이 치열했던 전세는 현재 비인기 매물이 됐다.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17년간 공인중개사로 활동한 A씨는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전세였다면 지금은 월세도 가능한 대안이 됐다”며 “보증보험이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늘었고, 반전세 문의도 많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B씨도 “확실히 전세를 무서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전세를 찾더라도 무조건 전세가격이 낮은 매물을 찾고, 월세 문의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새롭게 집을 구하는 사람들도 전세보다 비싸더라도 월세를 가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사회초년생인 MZ세대에게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진다. 신촌 대학가 주변으로 원룸을 알아보고 있는 이모(31)씨는 “대학원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보증금은 5000만원 안 넘는 선으로 구하려 한다”며 “전세가 무서운 제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전세는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제도다”며 “앞으로 월세를 지원하거나 전세 대출을 지원하는 식으로 전세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빛나·박지영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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