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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인규의 현장에서] 코인보다 더한 바이오?

“꼭두새벽에 일어나 창원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회사에 투자한 게 10년째인데 약속을 지킨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번번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 내년에는 보여드리겠다’ 이런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요. 어디 오늘도 똑같은 말이 나오는지 들어보려고요”

지난달 말 주주총회 시즌, 바이오기업들의 주주총회 분위기는 험악했다. 주총장은 주주들의 성토장이 됐다.

일부 기업에서는 ‘경영진 사퇴’ 같은 머리띠를 두르기도 했다. 바이오기업 대표들은 흥분한 주주들을 상대하느라 쩔쩔맸다. 거래정지가 된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결국 주주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바이오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최근 며칠새 주가가 반등하고는 있지만 지난 2020~2021년에 비하면 대다수 바이오기업들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기업 규모에 상관없는 전반적인 현상이다. 주가가 올라간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바이오는 사기, 코인보다 더하다”는 말까지 들린다.

글로벌 경제위기,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이런 추락의 원인에는 바이오기업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한 번 보자. 지난 2005년 기술특례상장이 도입된 뒤 이 제도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기업은 103곳이다. 그런데 이 중 지난해 말 기준 영업이익을 기록한 곳은 12곳뿐이다. 나머지 90여곳은 영업손실을 냈다. 거래정지된 기업도 3곳이나 된다.

특히나 일부 기업이 아마추어 수준의 경영활동으로 업계 전반적으로 신뢰를 무너뜨렸다.

임상시험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못한 한 기업은 마치 이 임상이 성공한 것처럼 포장해 공시를 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운 곳도 한두 곳이 아니다. 바이오 벤처들이 1~2년 전 발행한 전환사채(CB)는 올해 조기 상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자본보다 부채가 더 많은 곳이 즐비하다.

주주들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다. 더는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한 중소 바이오기업 대표는 “바이오가 쉽게 결과가 나올 수 없고, 실패 확률도 높다는 걸 주주들도 안다”며 “하지만 기업은 회사를 믿고 투자한 주주들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 자신이 없었으면 사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바이오는 돈이 재료다. 돈이 있어야 임상시험을 할 수 있고, 임상시험을 해야 신약이 개발된다. 돈은 신뢰를 품고 도는 것인데 신뢰가 무너진 바이오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바이오기업이 기술력만을 가지고 가능성을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전문적인 경영능력, 돈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사용하게 될지에 대한 세밀한 투자계획 등을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과정도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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