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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뜯어보지도 않은 주총 참석장…‘롯데월드 타워 8배’ 높이만큼 버려졌다
3월 한 달간 기자 집으로 배송된 주주총회 참석장 일부. 권제인 기자

[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3월이면 배송되는 주주총회 참석장, 열어 보시나요?

개학, 꽃놀이, 화이트데이 할 일이 많은 3월이지만 주식시장에선 주주총회에 촉각을 기울일 시기입니다. 상장사들이 주주환원을 늘리겠다며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의 의사를 밝히기도 하고, 행동주의 펀드와의 표 대결도 나타납니다. 이에 주가가 크게 변동하기도 하고요.

일반 주주들이 ‘주총 시즌’을 실감하는 건 퇴근길마다 꽉꽉 차 있는 우편함 때문일 겁니다. 보유 종목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민은행, 하나은행, 예탁결제원이 보낸 ‘주주총회 참석장’이 매일같이 날아오기 때문입니다. 4인 가구인 기자의 집에는 11통의 통지서가 날아왔는데요, 바쁘게 살다 보니 열어보지도 않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던져두기도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 읽지도 않는 주주 통지서가 한 해 롯데월드타워 8배 높이보다 저 많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명의개서대리인 3곳(국민은행, 하나은행, 예탁원)이 김종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의 통지서 발행 건수는 4525만7321건에 달했습니다. A4 한 장 두께인 0.1㎜를 기준으로 해당 통지서를 한 줄로 쌓을 경우 그 높이는 4526m로, 555m인 롯데월드타워를 8개 쌓은 것보다 높습니다.

실제 종이 사용량은 4526만건보다 2~3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편물에는 내용물을 담은 명의개서대리인의 봉투와 주주총회 참석장, 배당 안내 등 필수 품목뿐만 아니라 기업이 자율적으로 동봉한 안건 소개, 위임장, 서면투표용지, 편지봉투 등이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통지서를 받은 기업 중 내용물이 가장 많았던 곳은 A업체이었는데요, 주주총회 참석장, 정기주주총회 소집통지문, 안건 참고자료, 서면투표용지, IR담당자 앞 주소가 적힌 종이봉투 등 총 5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해당 통계가 ‘권리기준일’을 기준으로 집계되는 만큼 지난해 발행된 통지서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올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할 권리와 해당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배당을 받을 권리는 지난해 12월 28일 해당 기업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료를 집계한 3월 이후에 배당 통지문이 배송됐다면 2022년 항목에 포함돼야 합니다.

기자가 받은 주주총회 통지서. 5장으로 구성돼 있다. 권제인 기자

문제는 이렇게 버려지는 주주 통지서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0년 3172만5685건이던 통지서 발행 건수는 2년 만에 42.66% 증가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인쇄 및 발행에 돈이 들지만 주주들이 읽지도 않고 버리기 일쑤니 아까운 비용입니다. ESG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면서 해당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상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정기 주주총회, 임시 주주총회, 유·무상 증자, 주식 배당은 주주 통지가 필수적인데요. 다만 주주총회 소집통지에 한해서는 지분율 1% 이하 주주에게 금융감독원 혹은 한국거래소 공시로 통지서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정기 주주총회 공지를 전자공시로 갈음한 기업의 수는 2020년 1626개사에서 1879개사로 증가했습니다. 전체 상장사 대비 71.69%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 주식 참여 증가로 소액주주의 절대적인 숫자가 크게 늘면서 매해 통지서 발행 건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모든 상장사의 소액주주는 4721만명(중복)이었으나 2022년에는 8443만명에 달합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중복 집계를 제외한 12월결산 전체 상장법인 주식의 소유자 수는 2018년 561만명에서 1441만명으로, 2.5배 넘게 늘었습니다.

다만 전자공시로 통지서를 일괄 대체하는 것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연령이나 기타 조건에 따라 온라인상 정보에 접근성이 달라지기에 누군가에게는 의결권 행사를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소액주주에 대한 정기 주주총회 통지를 전자공시로 대체한 비율이 하나은행에서만 40%에서 28%로 줄어들었는데요, 하나은행 역시 그 이유를 위탁사 주주의 노령화로 꼽았습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명의개서대리인은 상장사의 주식 사무를 대리해주는 이행 보조자의 역할”이라며 “위탁사 주주의 연령층이 높을 경우 전자문서에 취약해 우편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가장 쉽게 종이쓰레기를 줄일 방법으론 주주가 직접 신청하는 ‘통지서 수령 거부 서비스’가 있습니다. 주주 통지서를 대리 배송하는 명의개서대리인 3사는 각종 주주 통지서 우편물을 거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인지도가 부족해 지난해 신청 건수는 3478건에 그칩니다. 제가 취재를 이어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해당 서비스를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알고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청방법은 간단합니다. 국민은행과 예탁원은 홈페이지에서 신청이 가능하며, 하나은행은 지점 방문이나 전화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은행은 “홈페이지에서 우편물 거부 신청이 가능하도록 전산 개발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y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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