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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원의 현장에서] 신의 이름으로

“할아버지요? 지옥에서 고통받고 계십니다.”

때로는 A씨, 때로는 실명. 매일 다른 이름들을 쫓기에 바쁜 사회부 기자생활, 의외로 가장 자주 접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신’이라는 이름이다. 전우원은 신의 이름으로 할아버지를 지옥에 보냈다. 그는 전두환 일가 중 처음으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는데 그 시작이 종교적 깨달음이었다고 한다. 그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폭로하는 내내 그의 목과 방 벽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지옥이 실재하는가’라는 관념적 질문까진 갈 것도 없다. 그가 마약사범 피의자라는 사실 역시 그가 광주에 방문한 지난달 31일만큼은 여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처벌에 대한 믿음이다. 전우원이 5·18 피해자들에게 사죄한 날은 우리가 잠시 신의 이름에 기대 위로를 받은 순간이었을 테다.

신의 이름이 항상 아름답게 쓰이지만은 않는다. JMS 총재 정명석의 성폭력 역시 신의 이름 아래 이뤄졌다.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며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그를 고소한 이들에게 최근 법원은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수차례 물었다. 정명석은 이미 성폭력 혐의로 10년을 복역하고 나와 또다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공동체를 위로하는 데에도, 개개인의 정신을 파괴하는 데에도 쓰이는 신이라는 이름의 위력을 다루기에 법리란 그토록 협소하다.

이성의 논리가 지배적일 거라 생각했던 기자생활은 예상과 크게 달랐다. 오히려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있을까’ ‘신이 없다면 이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반복이다.

각종 참사를 들여다보며 ‘신 따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핼러윈데이 도심 한복판에서의 인파 밀집, 수차례 전문가들이 경고해온 방음터널 화재, 바로 지난해 안전 등급 ‘양호’ 등급을 받았다는 교각 붕괴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이유를 행정 참사 외에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그 자체로 기만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14년간 2000명이 넘는 유기 아동을 살린 베이비박스를 찾았을 땐 ‘어쩌면 신이 개입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는 신을 운운하는 일조차 사치일 때가 있다. 사기 사건을 취재할 때 주로 그렇다. 부동산 투자를 빌미로 중장년층의 노후자금 수십억원을 편취한 50대 남성. 피해자들은 매일 그의 사무실을 찾아 “내 돈 내놔라” 소리쳤다. 피해자들이 집으로 돌아간 밤이면 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사무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토록 세계는 잔인하게 양분됐다.

하지만 세상은 들여다볼수록 더욱 규모가 크고, 이해할 수 없는 사기의 연속이었다. 최근 강남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의 발단은 코인 투자로 인한 손실 8000만원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신을 섬기며 살아간다고 철학자 울리히벡이 말했듯, 그들이 믿는 신에게도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가해자들에게 끊임없이 당위를 심어줬을 그 신의 이름은 ‘각자도생’이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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